월성원자력발전소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에 관여한 혐의 등을 받고 있는 백운규(56)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대전지방법원 오세용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8일 오후부터 6시간 동안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해 9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서 청구한 백운규 전 장관의 사전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오세용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백 전 장관 범죄 혐의에 대한 검찰 소명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범죄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어 보여 피의자에게 불구속 상태에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오세용 부장판사는 “월성 원전 자료 삭제 등 혐의로 산업부 공무원 2명이 이미 구속기소됐고 이들의 진술도 확보된 상태여서 백 전 장관에게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심문 후 3시간이 넘게 대전교도소에서 대기 중이던 백운규 전 장관은 구속영장 기각 결정으로 귀가했다.
그는 9일 준비된 차량에 타기 전 기자들에게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해 수립한 국정과제였다”며 “제가 장관 재임 시 정책을 이행할 때에도 국가원칙에 근거해서 적합하게 업무 처리를 했다”고 강조했다.
백운규 전 장관은 8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 전에도 “법과 원칙에 따라 적법 절차로 (원전 관련) 업무를 처리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에 앞서 월성원자력발전소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등 고발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대전지방검찰청 형사5부(이상현 부장검사)는 지난 4일 월성원자력발전소 1호기 폐쇄에 앞서 당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경제성 평가에 부당하게 관여한 혐의와 월성원자력발전소 1호기 운영 주체인 한수원 측의 정당한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백 전 장관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백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으로 월성원자력발전소 1호기 의혹 수사는 일단 제동이 걸렸고 청와대 등 이른바 '윗선'을 정조준하던 검찰의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검찰 관계자는 “영장 기각 사유를 납득하긴 어려우나, 더욱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판사 출신 서기호 변호사는 9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이 구속영장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현 정권에 대한 수사를 뻗어나가기 위한 무리한 수사였다는 게 증명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은 상반된 반응을 나타냈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에 관련 수사를 중단할 것을, 국민의힘은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9일 국회에서 한 브리핑에서 “정부의 정책결정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정치 수사임을 많은 국민들이 우려하고 비판해 왔음을 고려할 때, 사법부의 구속영장 기각은 합리적인 판결”이라며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는 노후 원전이 야기할 위험으로부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의 일환이었다.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을 계기로 검찰은 원전 안전 정책에 대한 정치 수사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김은혜 대변인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나 아직 진실은 가려지지 않았다. 결국 북한 원전 건설로 이어지는 이 정부의 위선을 국·과장 몇 명에 덮어씌우는 것으로 문재인 정권은 꼬리자르기를 시도할 공산이 크다”며 “입맛에 맞지 않는 판사에 탄핵딱지를 붙이는 사법부 길들이기의 학습효과가 아니길 바란다. 국정과제가 사법적 판단이 될 수 없다는 사고는 대통령을 왕으로 모시는, 헛웃음 나는 오만”이라고 비판했다.
김은혜 대변인은 “검찰은 한 치의 물러섬이 있어선 안 된다”며 “남한 원전 파괴ㆍ북한 원전 건설의 진실을 규명해 국민을 배반한 이 원전 사태의 몸통, 신(神)의 정체를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