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처음으로 6회 연속 인상해 연 3.25%로 올렸다.

여전히 5%대인 높은 소비자 물가 상승률과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이례적인 4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p 인상)으로 최대 1%p까지 확대된 한국(3%)과 미국(3.75∼4%)의 기준금리 차이를 고려하면 기준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주로 전 세계적인 공급망 문제에 기인하기 때문에 정부와 한국은행 입장에선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 외엔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별로 없다.

우리나라 원화는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국제 결제·금융거래의 기본 화폐)가 아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미국의 기준금리보다 많이 낮아지면 외국인 투자 자금이 한국에서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더 하락해 한국 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원화 가치 하락으로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입 제품의 원화 환산 가격이 높아져 인플레이션을 더 심화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원/달러 환율은 1300원대 초중반에서 비교적 안정세를 지속하고 있고 미국 연준은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한 한국은행은 24일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올 8월의 2.1%에서 1.7%로 내리며 내년에 경기침체가 심화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런 것들을 고려해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해 지난달 빅 스텝(기준금리 0.5%p 인상)에서 베이비 스텝(0.25%p 인상)으로 늦췄다.

◆한국은행,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 올 8월의 2.1%에서 1.7%로 내려

한국은행은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2022년 11월 24일 금융통화위원회는 다음 통화정책방향 결정 시까지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연 3%에서 3.25%로 0.25%p 상향 조정해 통화정책을 운용하기로 했다”며 “아울러 금융중개지원대출 중 상시 지원 프로그램의 대출 금리를 연 1.5%에서 연 1.75%로 인상하기로 했다. 2022년 11월 24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피해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 프로그램의 기존 대출취급분에 대한 대출 금리는 만기까지 연 0.25%로 유지한다.

한국은행은 이번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 “높은 수준의 물가 오름세가 지속되고 있어 물가안정을 위한 정책 대응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인상폭은 경기 둔화 정도가 8월 전망치에 비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외환부문의 리스크가 완화되고 단기금융시장이 위축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0.25%p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은 “국내경제는 소비가 회복 흐름을 이어갔지만 수출이 감소로 전환하는 등 성장세 둔화가 이어졌다. 고용은 취업자 수 증가폭이 둔화됐지만 낮은 실업률 수준이 이어지는 등 양호한 상황이 지속됐다”며 “앞으로 국내경제는 글로벌 경기 둔화, 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성장세가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년 성장률은 지난 8월 전망치(2.6%)에 부합하겠지만 내년은 지난 전망치(2.1%)를 상당폭 하회하는 1.7%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한국은행 “당분간 금리인상 기조 이어나갈 필요 있다”

한국은행은 “소비자물가는 석유류 가격 오름세 둔화에도 불구하고 전기·가스요금 인상, 가공식품 가격 상승폭 확대 등으로 10월에도 5.7%의 높은 오름세를 지속했다”며 “근원인플레이션율(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과 기대인플레이션율은 4%대 초반의 높은 수준을 이어갔다. 앞으로 소비자물가는 기저효과, 경기 둔화 영향 등으로 상승률이 다소 낮아지겠지만 5% 수준의 높은 오름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어 “금년 및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월 전망치(5.2% 및 3.7%)를 소폭 하회하는 5.1% 및 3.6%로 전망되지만, 환율 및 국제유가 움직임, 국내외 경기 둔화 정도, 전기·가스요금 인상폭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망했다.

한국은행은 “금융·외환시장에선 주요국 통화긴축 속도 조절 기대 등으로 장기 국고채 금리와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고 주가가 상승했지만, 단기금융시장에선 프로젝트 파이낸싱 자산담보부 기업어음 등의 금리가 큰 폭 상승하고 거래도 위축됐다”며 “가계대출은 소폭 증가에 그쳤고, 주택가격은 수도권과 지방 모두에서 하락폭이 확대됐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세계경제는 높은 인플레이션 및 주요국의 정책금리 인상 지속,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등의 영향으로 경기 둔화가 이어졌다”며 “국제금융시장에선 미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 조절에 대한 기대로 위험회피심리가 일부 완화되면서 미 달러화가 약세를 보였으며 장기시장금리가 하락했다. 앞으로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은 국제 원자재 가격 및 글로벌 인플레이션 향방, 주요국의 통화정책 변화 및 미 달러화 움직임, 지정학적 리스크 등에 영향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 성장세를 점검하면서 중기적 시계에서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에서 안정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금융안정에 유의해 통화정책을 운용해 나갈 것”이라며 “국내경제의 성장률이 낮아지겠지만 물가가 목표수준을 크게 상회하는 높은 오름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당분간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 금리 인하 논의는 시기상조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