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파트 이름이 너무 길어진다며 서울시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무분별한 외래어나 별칭(펫네임) 사용을 자제하고 한글 위주로 최대 10자 이내로 할 것을 권고했다.
서울시는 21일 서울시청 서소문청사에서 '공동주택 명칭 개선 3차 토론회'를 열고 명칭 제정 가이드라인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전문가 토론회, 올해 4월 업계 토론회에 이은 마지막 의견수렴 자리다. 최종안은 내년 초 배포 예정이다.
서울시는 △어려운 외국어 사용 자제하기 △고유지명 활용하기 △애칭(펫네임) 사용 자제하기 △최대 10자 적정 글자수 지키기 △제정 절차 이행하기 등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여기에 삼성물산 건설부문,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지에스건설, 포스코이앤씨, DL이앤씨, 대우건설, 두산건설, 롯데건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대형 건설사들이 동참하겠다고 서명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전국의 아파트 이름 평균 글자 수는 1990년대 4.2자에서 2000년대 6.1자, 2019년 9.84자로 길어지는 추세다. 현재 이름이 가장 긴 아파트는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 빛가람 대방엘리움로얄카운티(25자)'다. 서울에는 '항동 중흥에스클래스 베르데카운티(15자)'가 있다.
최근 아파트는 '지역명+건설사명+브랜드명+펫네임'과 같은 식으로 작명되곤 한다. 파크, 센트럴 등 무의미한 펫네임 탓에 아파트 이름이 길어지는 것이다. 25자 아파트 입주민들은 '빛가람동 대방(6자)'으로 줄여 사용한다고 서울시는 전했다.
서울시는 "아파트 이름이 길면 부르기도 외우기도 어려우니 최대 10자 내외의 적정한 글자 수를 준수해달라"고 강조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지금의 공동주택 명칭은 길고 복잡해서 불편하다'는 답변이 77.3%에 달했다. 응답자의 60.3%는 '최대 4~5글자가 적정하다'고 답했다.
서울시는 "지명을 활용해 아파트 이름을 지을 때 법정동·행정동은 준수해 달라"며 "인근의 다른 지명을 붙일 경우 사람들의 인식에 혼란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에 따르면 효창→용산, 신정→목동 등 맨 앞의 지역명을 변경해 아파트 가격 상승을 꾀하는 경우도 있다.
학계와 업계도 무분별한 외래어와 펫네임 사용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했다. 김현경 한양사이버대 교수는 "건설사의 대표적인 이름 하나만 잘 만들면 된다"며 "아파트 가치를 위해서는 건설사가 좋은 아파트를 짓고 입주민이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손창우 현대엔지니어링 책임도 "지명과 브랜드명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데 펫네임이 길어지고 이상해지는 게 문제"라며 "이름이 길다고 좋은 아파트가 되는 건 아니다. 입주민들도 불편하니 줄여 부르더라"라고 말했다.
손 책임은 "아파트명은 점유자의 소유물이기에 앞서 시민들이 건물을 식별하는 주소로서의 공공기능을 수행하는 재화"라며 "시민 공동생활을 위한 지명이라는 공공목적이 있는 만큼 휴대폰, 과자와 같은 소비재 네이밍과 동일시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신민규 삼성물산 부장은 "지명을 왜곡하는 건 시장에 대한 기만 행위"라며 "자기 동네 이름이 아닌데 옆 동네가 잘 산다고 그 이름을 차용한다면 자존심 상해야 할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김장수 서울시 공동주택지원과장은 "행정동·법정동을 준수해달라는 건 다른 동네 이름을 갖다쓰는 경우를 염두에 둔 것"이라며 "(용답동 구역에) 청계 쓰는 걸 막으려는 차원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김 과장은 "그런 부분에 오해가 있을 수 있는 만큼 매뉴얼을 배포할 때 분명하게 표현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