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꾼은 절대 손해 보는 행동은 안 한다. 그렇다고 상대방에게 덤탱이도 씌우지 않는다. 둘 다 잇속을 챙겨야 한다. 그게 정석(定石)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전격전인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나서면서 이 같은 면모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재계에서 나온다.
김승연 회장은 당초 대우조선의 특수선 사업부만 노렸다. 이에 반해, 정부는 통매각을 시도했다. 쌍방은 평행선은 달렸다. 그러다가 정부는 한화측이 대우조선을 통째로 인수하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넘기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회장이 이를 전격 받아 들여 빅딜이 매듭졌다는 얘기다.
27일 관련부처와 재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서울 여의도 한국수출입은행에서 긴급 산업·경제장관회의를 열고 대우조선을 한화그룹에 통매각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KDB산업은행은 곧 이사회를 열고 대우조선 매각을 의결할 계획이다.
김 회장은 지난 2008년 대우조선 인수를 시도했다.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지만 실사 저지 등 노동조합의 반대, 과도한 몸값(당시 6조원) 우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 속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뜻을 접어야 했다.
이번에 알려진 대로 2조원대에 대우조선 인수를 마무리한다면 김 회장은 당초 책정했던 몸값의 3분의 1 정도의 돈으로 대우조선을 품게 된다.
사실 김 회장은 군함 등 특수선 분야만 손에 넣으려 했다. 대우조선이 강점을 가진 분야인데다, 한화로서는 방산 중 해군 분야를 확충할 수 있어서다.
사실 대우조선은 지난해 4조4866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하는 동안 1조7547억원의 적자를 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이 심화된 상선 분야가 실적 악화의 주범이다.
이 같은 여건에서 한화가 상선까지 품는 '통인수'에 나선 것은 정부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상선 분야만 따로 떼어낼 팔 경우 국내에서 원매자를 구하기가 만만치 않아서다.
노회(老獪)한 김 회장을 설득할 수 있는 카드는 뭘까. 바로 KAI였다.
한화는 그룹의 성장 동력으로 우주항공 사업도 강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김 회장이 KAI인수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정부측에서 판단한 것이다.
KAI는 국내 유일의 전투기 제조기업으로 우주항공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관련부처 사정에 밝은 한 재계 인사는 “정부가 내 건 조건은 대우조선 통매각을 한화가 받아들이면 대신 정부는 KAI 인수를 돕겠다는 것이었다”며 “김승연 회장이 이를 전격 수용했다”고 전했다. 한화로서는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어서다.
앞서 한화는 계열사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통해 KAI 지분 5.99%를 보유했다가, 지난 2018년 전량 시간 외 대량 매매(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한 적이 있다. 당시로서는 지분 확보에 별 다른 의미가 없어서였다.
허나, 이제 한화그룹 안팎의 환경이 변했다.
김승연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 총수 자리를 맡은 것이 확실시되는 장남 김동관 (주)한화 부회장이 지난 1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부문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재계는 김 부회장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방산 사업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화가 KAI인수에 눈독을 들인 것을 이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한화가 KAI 인수에 성공할 경우 한화는 명실상부하게 육해공 분야를 아우르는 글로벌 굴지의 방산 기업으로 거듭나게 된다.
현재 KAI의 최대 주주는 국책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26.41%)이다. 수출입은행은 주가 하락 및 자본 건전성 등을 이유로 KAI를 매각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한화는 일치감치 2030년까지 글로벌 방산 톱 10에 올라선다는 목표를 세웠다”며 “대우조선, KAI 인수가 순조롭게 이어질 경우 한화는 한국판 록히드마틴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