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건설 이권 카르텔 척결을 주문하자 그 근거지라 할 수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바짝 엎드려 적극 수용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직원 부동산 투기에 이어 2년만에 터진 LH의 건설카르텔 척결 의지가 과연 실효성을 낼 지는 미지수다.
LH의 혁신이 특정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각종 제도 개선 방안을 꺼내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 되었기 때문이다. 건국이후 무려 70년이 지난 건설 이권 카르텔이 근절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등장한다.
지난해 12월 전직 임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해 전관예우를 근절하겠다고 밝혔지만 7개월만에 다시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아파트 15개 단지에서 철근이 누락된 사실이 나오자 건설산업의 이권 카르텔을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민 안전을 도외시한 이권 카르텔은 반드시 깨부수어야 한다”면서 “우리 정부는 반(反)카르텔 정부다.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을 혁파하지 않고는 어떠한 혁신도 개혁도 불가능하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아파트 부실 공사의 근본 원인으로 건설산업의 이권 카르텔이 지적되고 있다”며 “고질적인 건설 산업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법령에 위반한 사항은 엄정한 행정 및 사법적 제재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건설 카르텔 척결을 위해 반카르텔 공정건설 추진본부를 설치하기로 했다고 2일 발표했다.
'전관예우'가 없는 설계 감리회사에는 가점을 주고. 부실시공 업체는 한번 적발로 퇴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최근 문제가 된 LH가 발주한 공공아파트의 지하주차장 '철근 누락' 사태와 관련해서는 해당 설계, 시공, 감리 관련 업체와 관련자를 수사 의뢰하기도 했다.
이 사장은 "국민의 보금자리로서 가장 안전해야 할 LH 아파트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이번에 건설안전을 제대로 확립 못 하고 설계·감리 등 LH 건설공사 전 과정에서 전관 특혜 의혹을 불식시키지 못하면 'LH의 미래는 없다'는 각오로 고강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LH가 밝힌 '반카르텔 공정건설 추진본부'는 경기남부지역본부에 설치된다. 건설안전기술본부장이 본부장을 맡고, 분야별로 외부 전문가가 참여한다. 운영 기간은 이날부터 시작해 카르텔이 철폐될 때까지다. 설계, 심사, 계약, 시공, 자재, 감리 등 건설공사 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관예우, 이권 개입, 담합, 부정·부패 행위 등을 근절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고질적인 건설산업의 잘못된 관행을 근절·개선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건설혁신방안을 마련하는 임무도 맡았다.
LH는 발주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건설 현장 관리체계도 정비한다면서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건설카르텔 관련 부실시공 유발업체는 제재하고, 특히 중대재해와 건설 사고를 유발한 업체는 입찰 참가를 제한하는 등 퇴출 수준의 규제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LH 조직 내부적으로는 감리용역 전담 부서를 개편하고 감리사 현장관리조직을 의무화한다. 공사 단계별로 건축물 정밀안전점검 의무도 시행한다. 영상기록검측, 디지털 시공 확인 체계로 전환해 검사 기능을 강화하고 품질과 안전 관련 자재 외에는 직접 구매자재 적용 제도를 전면 재검토할 계획이다.
전관 예우 차단을 위해선 설계부터 시공까지 모든 단계에서 전관이 개입할 수 있는 업무를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 부실시공 관련 업체와 관련한 민·형사 조처도 이뤄진다.
LH는 지난달 31일 발표된 무량판 구조 철근 누락 15개 아파트 단지의 설계, 시공, 감리 관련 업체와 관련자를 무량판 구조 설계오류와 시공누락에 따른 부실시공을 문제 삼아 오는 4일 경찰청에 수사 의뢰하기로 했다. 업체 책임이 드러나면 구상권을 청구할 방침이다.
이 사장은 "내부 감사를 하기는 했지만 자체적으로 하면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을 것 같아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넘어가자는 취지로 경찰이 객관적으로 밝혀달라고 수사 의뢰를 한 것"이라며 "LH 전관이 없으면 컨소시엄에 포함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리는데, 이런 내부 담합 의혹까지 모두 발본색원해달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또 전관업체 간 담합 의혹에 대해선 정황이 의심되면 즉시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의뢰할 예정이다.
입찰담합 관련 자체 분석 결과와 외부 제보, 언론보도 등에 따라 의심 사유가 발생하면 의뢰한다는 방침이다. LH는 입찰 담합징후 분석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며, 매월 공정위로 입찰 현황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사장은 "시공사, 설계사, 감리사까지 LH 사업에 참가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전관 목록을 모두 사업제안서에 기록해 제출하도록 할 계획"이라며 "전관 업체에 감점을 주는 것은 형평성 상 무리가 있을 것 같아, 전관이 없는 업체에 일정한 가점을 주는 방안도 현재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부실시공 문제가 제기된 15개 단지의 무량판 구조와 관련해선 입주민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보강공사를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3개 지구는 보강이 완료됐으며, 8개 지구는 이달 말 보강이 완료될 예정이다. 입주가 완료된 4개 지구는 다음 달 말까지 보강공사를 완료하기로 했다. LH는 입주민이 원하는 점검업체로 정밀안전점검을 실시하고, 검증된 공법으로 보강하는 한편 보강 과정에 LH가 입회해 정밀시공이 이뤄질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장은 무량판 구조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가급적 주차장에 이 구조를 활용하는 것은 지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무량판 구조는 설계 공법상 문제가 전혀 없다"며 "새로 도입돼 안착이 안 돼 나타나는 문제이기 때문에 무량판 구조를 LH가 안 쓰겠다기보다 필요한 곳에는 쓰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나 주차장에 활용하는 건 최대한 지양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LH의 내부 혁신안이 제대로 작동될 지는 불확실하다.
2년 전에도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와 관련해 "뼈를 깎는 자성으로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전관예우 등 부동산업계의 고질적인 병폐는 근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LH 일부 임직원들이 내부정부를 이용해 3기 신도시가 들어설 지역에 미리 땅을 사들이는가 하면 농지 불법 임대차를 통해 수익을 낸 것으로 밝혀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이번에 LH의 존립 이유를 부정하는 철근 빠진 부실 아파트 문제가 불거지자 부동산 카르텔 해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LH는 지난해 12월 자체혁신안을 국토부 장관에게 보고하며 전관예우를 차단하겠다고 천명했지만 7개월 만에 다시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LH는 퇴직 감평사·법무사가 임원으로 재직 중인 회사 또는 퇴직자 본인과는 퇴직 후 5년간 수의계약을 하지 않고 LH 1급 이상 퇴직자가 취업한 건설·엔지니어링 회사와는 퇴직 후 1년 간 LH와 계약 자체를 제한하기로 했다.
이번 부실 아파트 사건과 관련 전관 특혜 의혹이 제기됐을 당시, LH는 업계 구조상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한준 사장은 "LH는 대한주택공사 시절부터 60년이 된 조직이라, 살펴보니 어느 업체를 선정하든 LH 전관들이 모두 들어가 있더라"며 "얼마나 많냐, 적냐의 차이다. 검단 아파트 설계·감리사의 경우 수주에서 탈락한 업체의 LH 출신 전관이 더 많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특혜 위혹이 거세지자 이 사장은 이날 개최된 긴급회의에서 "이번에 건설안전을 제대로 확립 못하고, 설계·감리 등 LH 건설공사 전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특혜 의혹을 불식시키지 못하면 LH의 미래는 없다는 각오로 고강도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그러면서도 전관이 들어가 있는 설계 감리업체들에게 감점을 주겠다는 원안을 수정해 전관이 없는 업체에 가점을 준다는 식으로 살짝 방향을 틀었다.
이와 관련, 지난달 31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감사원에 공익 감사를 청구했다. 지난 4월 검단 신축아파트 공사의 설계·감리를 맡은 업체가 LH 전관이 영업하는 업체였다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철근 누락이 확인된 15개 단지 중 절반이 넘는 8개 단지의 감리 업체도 전관 특혜 대상이었다.
이 가운데 3개 단지의 감리를 맡고 있는 한 감리 업체는 최근 5년 동안 LH로부터 730억 원이 넘는 계약을 수주했다. 지난 4월 발생한 인천 검단 아파트단지 주차장 붕괴사고, 그 아파트의 감리 업체 가운데 한 곳이기도 하다.
경실련이 밝힌 2015~2020년 LH 설계용역 수의계약 536건, 건설사업관리용역 경쟁입찰 290건에 대한 수주 내용 분석에 따르면, LH 전관 영입업체 47곳이 용역의 55.4%(297건), 계약 금액의 69.4%(6582억원)를 수주했다. 결국 LH 출신을 영입한 건설업체들이 그동안 사업 수주 과정에서 혜택을 받았고 LH가 이들의 부실한 업무 처리를 방치하면서 붕괴 사고까지 발생했다는 것이 경실련의 주장이다.
경실련 관계자는 "국토교통부는 설계·감리·시공업자로 구성된 건설 이권 카르텔을 비난만 할 뿐 원인으로 충분히 지목될 수 있는 전관특혜 문제는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