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동일인 규정 쿠팡 김범석 사실상 제외…호랑이 그리려다 고양이 그렸나?
대기업 동일인 규정 쿠팡 김범석 사실상 제외…호랑이 그리려다 고양이 그렸나?
  • 남궁현 선임기자 ndsoft@ndsoft.co.kr
  • 승인 2023.12.2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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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 1986년 도입 이후 동일인 기준 첫 구체화..."대기업 규제 사각지대 확대 '우려'
@사진=공정거래위원회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사진=공정거래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가 27일 발표한 동일인(총수) 규정 개정안이 쿠팡 김범석 의장의 동일인 지정을 사실상 회피할 수 있도록 해줬다고 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 국적의 외국인인 김 의장은 동일인 규정 제도 개선 논의의 시발점이 됐던 인물로, 공정거래위의 이번 조치는 '자연인' 총수가 있어도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을 신설해 '호랑이 그리려다 고양이 그린 격'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이날 기업집단 지정 시 동일인을 판단하는 기준을 정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하고 오는 28일부터 내년 2월 6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판단 기준 및 절차 등을 정한 '동일인 판단 기준 및 확인 절차에 관한 지침'은 다음달 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공정위가 이날 발표한 동일인 판단 기준에는 포괄적이고 추상적이었던 동일인의 판단 기준을 구체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간 학계 등을 중심으로 '사실상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자연인'을 동일인으로 본다는 지정 기준 자체가 모호하고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지적에 따라 이번 공정위 지침에는 이 원칙은 그대로 두되 자연인 특정이 어려울 경우에는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한다는 예외 조항을 추가한 것이다. 

또 동일인의 국적과 무관하게 이를 적용하도록 해 외국인 총수의 동일인 지정 회피 논란을 피해갔다. 또 동일인 선정 결과에 대해 기업집단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도 마련했다.

공정위는 "이번 시행령 개정안 및 지침은 동일인 2·3세로의 경영권 승계 본격화, 외국 국적을 보유한 동일인 및 친족의 등장 등 동일인과 관련한 경제환경의 변화에 대응해 보다 명확하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동일인을 판단하기 위하여 관계부처와의 협의, 전문가 의견 청취 등의 검토과정을 거쳐 마련했다"고 말했다.

경제의 글로벌화 심화로 외국인이 지배하는 법인이 한국에 설립되는 사례가 증가해 외국인의 동일인 해당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새 기준안을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공정위는 동일인 판단 기준으로 ①기업집단 최상단회사의 최다출자자 ②기업집단의 최고직위자 ③기업집단의 경영에 대해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 ④기업집단 내・외부적으로 기업집단을 대표해 활동하는 자 ⑤동일인 승계 방침에 따라 기업집단의 동일인으로 결정된 자 등 5가지를 규정하고, 해당 기준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동일인을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공정위가 제시한 동일인 판단의 일반 원칙은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으로서, 이러한 자연인이 없을 경우 해당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국내 회사나 비영리법인 또는 단체를 동일인으로 간주하도록 했다.

시행령에서는 일반원칙의 예외 요건을 적용해 기업집단 범위에 차이가 없고, 친족 등 특수관계인의 경영참여·출자·자금거래 관계 등이 단절되어 있는 등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는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이 있는 경우에도 국내 회사나 비영리법인 또는 단체를 동일인으로 볼 수 있도록 허용하는 '예외 조건'도 마련했다.

공정위는 예외 조항으로 ▲ 동일인을 자연인으로 보든 법인으로 보든 기업집단의 범위가 동일할 것 ▲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이 최상단 회사를 제외한 국내 계열회사에 출자하지 않을 것 ▲ 해당 자연인의 친족이 국내 계열회사에 출자하거나 임원으로 재직하는 등 경영에 참여하지 않을 것 ▲ 자연인 및 친족과 국내 계열사 간 채무 보증이나 자금 대차가 없을 것 등 4가지를 제시했다. 

이 기준대로라면 쿠팡 김범석 의장은 개정안 시행 이후에도 동일인 지정을 피할 가능성이 오히려 더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일인 기준 개정 논의의 불을 지폈던 당사자가 정작 개정된 제도의 제재 망을 벗어난 셈이다. 

다만 향후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친족의 경영 참여가 새롭게 드러나거나, 지분 구조가 변경된다면 김 의장이 동일인으로 새롭게 지정될 여지는 남아 있다. 공정위가 최근 입법 추진 의사를 밝힌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을 통해 쿠팡과 김 의장에 대한 간접적인 규율이 이뤄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더우기 기존에 동일인으로 지정됐던 국내 재벌 총수들마저 이 예외조항을 이용해 동일인 지정을 피할 길이 열리면서 당초 기대와 달리 '호랑이'가 아닌 '고양이'를 그렸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공정위의 기준 변경으로 대기업집단의 사익편취 규제에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동일인이 법인인 기업집단은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의 사익편취 규제를 받지 않게 된다. 사익편취는 동일인이 자연인인 경우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자연인 총수가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한다고 해도 총수 본인이나 친족 관련된 출자·자금거래 등 지정자료 제출 의무도 없다.

따라서 개정안이 시행되면 자연인에서 법인으로 동일인을 변경해줄 것을 신청하거나 중장기적으로 지배구조 등을 바꿔 동일인 변경을 시도하는 대기업들이 다수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현재 상황에서 법인 동일인 변경 요건을 충족하는 대기업 집단은 많지 않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지난해 5월 기준 82개 대기업집단의 동일인 중 자연인은 72명, 법인 10개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동일인 판단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고 수범자들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지침 제정을 추진하게 됐다"면서 "2023년 현황에 맞춰 예외 요건에 해당하는 대기업 수를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숫자가 많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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