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사실혼 관계의 여성 명의로 수천억원대 재산을 숨겨준 정황이 확인됐다.
19일 시사저널 보도 등에 따르면 이 같은 사실은 지난 2017년 허 전 회장이 사실혼 관계인 황모씨측과 재산 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허 전 회장이 재판부에 제출한 진술서를 통해서다.
진술서의 일부다.
“결혼 후 딸만 2명 낳고 (중략) 8대 종손으로서 아들이 없다는 것이 선조에 대한 불효라고 늘 생각하던 차 38살 때 우연히 (중략) 황씨(22세)를 만나 풋사랑을 하다 보니 정이 들어 (중략) 그 사이 큰딸이 탄생하여 (광주광역시 서구) 농성동에 집을 사고 개축·증축하여 건축면적 99.5평의 2층집이 탄생하게 되었으며….”
허 전 회장은 이후 황씨와 해당 저택에서 거주하며 슬하에 2남2녀를 뒀다. 그는 2000년과 2001년 HH레저와 HH개발을 각각 설립했다.
HH개발은 허 전 회장(20%)과 황씨(20%), 이들의 4자녀(15%씩) 등이 지분 100%를, HH레저는 허 전 회장과 황씨가 각각 50%씩 100%의 지분을 보유했다. HH라는 상호는 허 전 회장과 황씨 성의 이니셜로 알려졌다.
이 중 HH레저는 2003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운영하던 동두천의 현대다이너스티(현 티클라우드CC)를 인수했다.
당시 다이너스티 골프장 가액은 회원권과 채권 등을 더해 1150억원으로 추산됐지만 실제 거래는 152억2000만원에 이뤄졌다. 허 전 회장은 골프장 매입 비용 전액을 대주그룹 계열사를 통해 조달했다고 밝혔다.
“(현대다이너스티 인수 당시) HH레저는 현금 100원도 없었으며 서류상 세무상 정리했습니다. 회사 이름만 차명으로 빌린 상태입니다. 현대다이너스티를 인수한 후 지금까지 회사에서 모든 것을 투자하고 금융가와 회사에서 자금 차입 시 본인이 보증을….”
허 전 회장은 이후 골프장 개·보수 및 확장 등에 투입된 자금도 모두 자신이 마련했다고 주장했다.
사재 70억원을 대여해 토지 구입 및 지반공사 등을 진행했고, 대주그룹을 운영하면서 조성한 비자금으로 투자했다는 설명이다.
“회사가 망했을 때 노후 대책으로 담양다이너스트를 고급스러운 명문 골프장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중략) 2~3년에 걸쳐 토지 약 30만 평을 매입하여 2006년에 완성했습니다. (여기에 들어간 비용 650억원 정도는) 대주건설에서 전액 투자하였고….”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HH레저는 지난해 기준 자산총액 982억원, 연매출 113억원의 레저기업으로 성장했다.
HH레저는 현재 최대주주(50%)인 황씨가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그의 형부인 차모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허 전 회장은 HH레저와 비슷한 방식으로 HH개발에도 120억원을 투자했다. 이 자금으로 HH개발은 부동산 임대업과 매매업을 영위했다.
또 HH개발이 지분 100%를 보유한 뮤제오를 통해 가구를 수입해 판매하는 사업도 벌이며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허 전 회장은 대주건설에서 HH레저와 HH개발로 넘어간 자금이 실제로는 자신의 사재라고 주장했다.
1998년 IMF 외환위기로 대주그룹 전반에 자금난이 발생하자 허 전 회장이 당시 보유 중이던 현금 1600억원 중 약 1200억원을 대주건설에 대여했는데, 이 자금을 HH레저와 HH개발에 투자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HH레저에 800억원, HH개발에 120억원 등 총 920억원은 허재호가 회사(대주건설)에 빌려준 돈에서 반환받아 투자하였고 (중략) 골프장에 (개인 명의로) 빌려준 대여금은 채권 압류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허재호’에서 ‘주주임원 차입금’으로 바꿨습니다.”
따라서 황씨는 차명 소유자일 뿐 자신이 HH레저와 HH개발의 실소유주라는 것이 허 전 회장의 주장이다.
허 전 회장은 2015년 뉴질랜드로 출국하기 직전까지 자신이 이들 회사에 대한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했다고도 밝혔다.
“2014년까지 (HH레저의) 대표이사와 사내이사 선임 등 경영을 하였으며, 나의 소지품도 2014년 11월까지 골프장에 있었습니다. (2014년 3월) 광주교도소 출소 후 골프장을 숙소로 짐작하고 기자들 수십 명이 대기하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허 전 회장이 HH레저 등을 상대로 대여금을 돌려 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한 건 그가 뉴질랜드로 출국하기 직전인 2014년 무렵 경영에서 배제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허 전 회장은 수백억원대 횡령 및 탈세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던 2010년부터 2014년 사이 자신의 HH레저 지분 50%를 뮤제오(23%) 등 황씨 측에 넘겼고, HH개발의 경우는 허 전 회장의 지분율이 20%에 불과해 사실상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던 상황이다.
“HH레저는 2014년 회계장부 열람을 원했는데도 불구하고 거부하였으며 또한 황씨는 근무하지도 않고 월급은 사장보다 훨씬 많이 받아가 착복하고 (중략) HH개발 측은 골프 연습장(약 150억원)과 빌딩(약 200억원) 등 핵심 자산을 주주총회도 열지 않고 공매공고….”
그러나 허 전 회장은 HH레저 등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중도하차했다.
그 배경에 대해 허 전 회장의 측근은 “허 전 회장은 현재 황씨와 결별한 상황”이라며 “하지만 황씨가 쥐고 있는 재산이 결국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4명의 자녀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소송을 중단하기로 마음먹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허 전 회장의 은닉재산으로 의심되는 황씨 명의의 법인은 HH레저와 HH개발뿐만이 아니다.
한때 대주그룹 계열사로 분류된 태전건설도 그런 경우다. 2006년 12월 허 전 회장의 지분 100%로 설립된 태전건설은 이듬해인 2007년 12월 최대주주가 황씨로 변경됐다. 당시 황씨는 태전건설 지분 45%를 225만원에 사들였다. 헐값에 태전건설 경영권을 확보한 것이다. 나머지 주주들도 허 전 회장과 황씨의 지인들로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