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식의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21009] 이수 - Goodbye Again(1961)
[이충식의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21009] 이수 - Goodbye Again(1961)
  • 이상호 기자 sanghodi@hanmail.net
  • 승인 2021.05.0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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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슬픔’ 을 뜻하는 어려운 한자말로 제목을 붙인 시네마 <이수(離愁)>. 

아나톨 리트박의 '61년 연출작인 이 드라마에서 스물다섯의 청년 필립은 마흔의 커리어우먼 폴라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며 데이트를 청하죠. 

<이수 - Goodbye Again>은 그렇게... 오래된 사랑과 새로운 사랑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여자의 모습, 그리고 그녀의 선택을 섬세한 시선으로 조명합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폴라(잉그리드 버그만 분)는 트럭매매를 하는 부유한 중년사업가 로제(이브 몽땅 분)와 5년째 연인 사이 이죠.

한데 두 사람은 그다지 결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죠(로제가 더욱 그러합니다만...).

뭔가 균형이 맞지 않는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셈으로, '왜 결혼하지 않냐' 는 질문에 폴라는 '자유가 중요하기 때문' 이라고 주장합니다만... 정작 그녀의 삶은 자유로움과 거리가 멀죠. 

폴라는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집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전형적인 플레이보이인 데다 거짓말에도 능수능란한 로제는 젊게 살고 싶다며 과속운전을 하고 젊은 여자를 만나러 다니는데 말이죠.

폴라에겐 눈치빠르고 충실한 수호천사인 하녀 가비가 있습니다.

그녀는 폴라가 로제로부터 일이 생겨 만날 수 없게 됐다는 거짓 전화를 받을 때마다 이런 일이 한 두번 있었던 게 아님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신속하게 외출복을 옷장에 집어 놓곤 하죠.

그러던 어느날 폴라는 미국인 부호 이혼녀 반 더 배쉬(제시 로이스 랜디스 분)를 고객으로 소개받습니다.

실내장식을 의뢰한 그녀의 아파트를 방문한 폴라는 그집 외아들인 변호사 필립(앤소니 퍼킨스 분)을 만나게 되죠.

매우 자유분방하고 로맨틱한데다 유머 감각까지 갖춘, 젊은 황태자 스타일의 필립은 상법 분야는 흥미가 없는 변호사입니다.

그는 스킨쉽이 곧 사랑이라는 걸 거부하고, 헤어짐 자체를 싫어해 여자친구 없이 혼자 외로워하는...

7살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한 덕분(?)에 어머니가 수많은 저녁 파티에 자기를 데리고 가 수천명의 사람을 알고 27번이나 전학을 했던...

또 13개 국어로 '사랑해' 라는 말을 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에얼스 카레데'(사랑해요)라는 노르웨이 말을 제일 좋아하는 청년이죠.

그런 필립이 세련됐지만 왠지 슬픈 눈빛으로 우수에 차보이는 중년 여성 폴라에게 첫눈에 반한 겁니다.

그날 이후 자신의 일도 내팽개치고 매력적인 폴라를 열정적으로 쫓아다니던 필립은 그녀와 식사를 함께 하다 갑작스레 일어나 익살을 떨죠.

“비인간적인 짓을 한 당신을 죽은 자의 이름으로 고발합니다. 

진정한 사랑을 붙잡지 않고 그냥 스쳐 보내게 한 죄, 행복해야 하는 의무를 등한시 한 죄, 도망자처럼 그럭저럭 마지못해 무료하게 지내는 삶을 영위한 죄로 당신을 고소합니다.

피고는 극형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고독이라는 이름의 '독방형' 에 처하는 바입니다!”

너무 끔찍한 형이라며 웃는 폴라를 향해 필립은 "사랑받지 못하고 외롭게 사는 것은 정말 최악이에요" 라고 나름 덧붙이죠.

이토록 낯뜨거운 프로포즈를 격정적으로 하던 필립은 다음엔 보다 세련된 애정의 문구가 적힌 쪽지를 건넵니다.

"일요일 6시에 콘서트홀 살 플레옐 에서 근사한 음악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분명히 질문인데도 "?" 표시가 없는, 세개의 점으로 표시된 "..." 을 강조한 메시지로,

폴라는 바로 이 '말줄임표(...)' 속에 숨겨진 머뭇거림과 모호함의 감성을 마주하게 됩니다.

필립은 슈만의 아내이자 열네 살 연상의 클라라를 사랑한 브람스에게서 도플갱어적 감성을 공감했을까요?

원작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Aimez-vous Brahms...)' 를 음미해보면 까칠한 독일어 이름이 부드러운 비음의 프랑스어에 절묘하게 녹아듦을 알 수 있습니다.

그토록 낭만적인 사랑의 밀어를 받은 폴라는레코드판을 뒤적거리며 브람스 교향곡 3번 음반을 찾아내지요.

그녀는 17살 이후 처음으로 브람스 음악을 듣게 되면서 필립이 남긴 초대 문구를 통해 그간 잊고 있었던 사랑의 열망에 휩싸이게 됩니다.

브람스라는 이름과 음악이 폴라의 연애세포를 망각으로부터 일깨워준 셈이죠.

필립은 새로운 사랑 앞에 주저하는 폴라에게 얘기합니다.

"사랑을 하기 위해선 두 사람이 필요하죠. 사랑을 주고 또 사랑 받아야 하니까요...

왠지 슬퍼보이세요. 전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폴라는 자기가 필립보다 열다섯 살이나 많다는 사실을 마냥 맘에 걸려하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여자를 만나러 다니느라 자신을 외롭게 만드는 로제를 원망하며 점점 필립에게 기울어지게 됩니다.

폴라는 결국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며 내밀하게 다가오는 필립의 데이트 신청에 응하게 되죠. 

그러나 공연장에서 오케스트라가 브람스 교향곡 1번 4악장의 벅찬 환희의 선율을 연주할 때 폴라는 바람둥이 연인 로제와의 첫 만남을 떠올립니다. 

이처럼 첫 데이트부터 폴라와 필립의 관계는 위태롭기 그지없어 보이죠.

그런 폴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필립의 시선은 오로지 폴라에게 향합니다.

필립은 왜 브람스를 들으러 가자고 했을까요? 전봇대에 붙여진 브람스 음악회 포스터를 우연히 발견해서였을까요? 

이 글의 제목에서 보듯,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고 물음표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필립이 폴라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묻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죠. 

오로지 같이 있고 싶은지를 알고 싶은 거고,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을 제안해 봤던 겁니다. 

‘나랑 같이 시간을 보내요. 나를 좋아하게 될 거예요...’ 라는 뜻이었을 터, 폴라가 망설일 수록 필립은 더욱 노골적으로 그녀에게 구애를 합니다.

그러나 브람스의 음악을 들으러 가자고 한 순간부터 필립과 폴라의 비극적 결말은 예견되었는지도 모르죠. 

청년 필립이 15살 위의 여인 폴라에게 매혹됐듯, 작곡가 브람스 또한 14년 연상의 피아니스트인 클라라 슈만을 평생 흠모하며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브람스는 클라라를 진정 사랑했지만... 클라라는 스승이나 다름없는 슈만의 부인이었으니 브람스로서는 그녀에게 마냥 가까이 접근하는 일이 쉽지 않았겠지요. 

비록 슈만이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 때문인지 브람스의 음악에선 헤아릴 수 없는 애수와 고독감이 진하게 풍겨 나옵니다. 

우수어린, 또 깊이 있는 표현력 때문에 낙엽이 지는 가을에 들으면 더욱 가슴에 와 닿지요.

극중 필립과 폴라의 캐릭터 설정은 브람스의 클라라 슈만을 향한 연모의 정서와 데칼코마니를 이루고 있는 셈입니다.

음악회 인터미션 중 철부지 같은 사랑 연기는 제발 고만하라고 질책하는 폴라에게 필립은 진지하게 답하죠.

"당신을 만나고 '변호사', '아이', '애인' 별 연기를 다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다 당신을 위한 것이지요. 그게 사랑 아닐까요?

전 로제에게서 당신을 향한 사랑을 빼았을 권리가 있어요. 꼭 그럴 거에요!"

결국 두 사람은 연인 사이로 발전하지만 폴라의 허전한 마음은 완전히 채워지지 못합니다. 

이처럼 주인공들의 공허한 심리 상태와 사랑의 줄다리기가 펼쳐질 때 그들의 복잡미묘한 감정은 고독하면서도 열정적인 브람스의 교향곡을 통해 암유되죠. 

비가 몹시 내리는 어느 날, 폴라는 흠뻑 젖은 채 가게 앞에서 몹시 슬픈 모습으로 서 있는 필립을 발견하곤 강렬한 모성애를 느끼며 힘껏 포옹해 줍니다. 

그 날 이후... 필립은 폴라의 아파트에 들어앉게 되고, 뜨거운 사랑을 불태우게 되죠.

하지만 그들의 정사(情事)를 눈치챈 로제는 젊은 아가씨와 놀아나는 주제이면서도 '최소한 난 정상이잖아' 라며 애송이 필립과 폴라의 교제를 비정상적인 풋사랑으로 폄하하죠.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고 모멸감에 휩싸인 폴라는 로제에게 당분간 만나지 말자며 황급히
그의 곁을 떠나갑니다 .

운전하는 차창 너머 시야가 일렁거리자, 그녀는 눈물 땜에 그런지도 모르고 윈도 브러쉬를 돌려보지만...  그 비참함에 하염없이 흐느끼죠.

얼마 후 모두가 의미없는 여자였고 진정 사랑하는 여자는 당신 밖에 없다는 로제의 변명을 폴라는 '그저 기다려주는 내가 있으니까 만만하냐' 며 냉정하게 자릅니다.

그렇게... 폴라는 휴가를 같이 보내자는 로제의 제안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럴 순 없다며 거절하고 맙니다.

2달 넘게 폴라를 만나지도 못하고 지낸 후에야 그녀가 자기의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 로제는 애끓는 진심을 털어놓죠.

" 무슨 말부터 할까 고민했는데... 당신이 제발 도와줘야겠소. 어제밤 클럽 무도회에서 필립과 춤추는 당신을 보고는 '이제 그만 집에 함께 갑시다' 라고 말하고 싶었어. 그렇게 당신과 헤어지곤 마냥 걸으며 생각했소. '이렇게 살 수는 없어. 정녕코 당신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이요. 다 내 잘못이야. 당신을 잡았어야 했어, 처음부터 말이지. 제발 나한테 돌아와줘!"

'그말을 그렇게 하기가 힘들었냐' 며, '당신이 바보라서 그랬다' 며, 그러곤 '이제 다 상관없다' 며, '이제야 나도 집에 돌아왔다' 며, 그를 다시 받아들이는 폴라... 로제의 청혼을 수락한 폴라는 필립에게 쓰라린 이별을 고합니다.

"필립, 이해해줘요. 우리는 서로가 필요할 때 만났던 거에요. 둘 다 운이 좋았던 거죠. 하지만 당신도 잘 알다시피 그것만으로는 관계를 유지할 수 없어요."

필립은 답합니다.

" 그가 한마디 했다고 당신은 돌아가는 건가요. 제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겠군요. 제 덕분에 두 분이 결혼까지 하게 됐잖아요. 나는 '큐피트' 같은 존재였던 게죠. 그래요, 큐피트! 로제도 당신도 나도 모두 바보에요. 왜 절 사랑하지 않는거죠? 당신이 말한대로 내 맘속 악마를 빼낼 순 없어요. 폴라, 이제 난 어떻게 하죠?"

" 뉴욕으로 돌아가야죠. 친구도 있으니 잘 살 거에요."

" 맞아요, 좋은 여자도 만나겠죠. 결혼도 하고 행복하게 살겠죠? (울먹이며)내 슬리퍼가 어디 있죠? (침대 밑에서 하나 찾곤) 다른 쪽은 요?"

깊이 상처받은 채 어린 애처럼 울며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필립을 향해 폴라는 비통한 목소리로 부르짖습니다.

"필립, 날 이해해줘요. 난 너무 늙었어요. 늙었다고요!"

남이 봤을 때 '정상적인 관계' 울타리 안에 비로소 들어갔다는 것이 자못 위안이 됐던 걸까요... 폴라는 로제와 결혼을 하고 나오면서 '치과에 다녀온 기분' 이라고 토로합니다.

마치 자신을 괴롭히던 사회적 시선, 죄책감을 말끔히 벗어버렸다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결혼 후에도 로제의 바람기는 고쳐지지 않습니다.

어느 주말 저녁, 로제와 외식을 하기 위해 옷을 고르는 폴라에게 전화가 걸려오죠. 

일 때문에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로제... 폴라는 필립의 예전 선고대로 '고독이라는 형(刑)' 에 속절없이 처해진 채, 쓸쓸히 화장을 지웁니다.

1. <이수 -  Goodbye Again>(1961) 트레일러 
https://youtu.be/pRIYpLDjcjg

<Aimez vous Brahms... - Goodbye Again>
https://youtu.be/WCBoz0ls57k

2. 브람스 '교향곡 3번 F장조, Op.90' 중 '3악장'
포코 알레그레토(Poco Allegretto) 
- 첼리다비케 지휘 뮌헨 필하모니커(1985) 
: https://youtu.be/ixOdOMfgMLw

프랑수아즈 사강이 스물넷에 쓴 자신의 소설 제목('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으로 선택한 작곡가가 '브람스(Brahms)' 인 것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 같죠.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슈베르트와 함께 독일-오스트리아 음악가 계보에 속하지만...

브람스라는 이름은 보다 부드럽게 발음할 수 있는, 또한 자못 낭만적으로 들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로 60년대 뭇 청춘을 설레게 했던, 사강의 소설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를 두고 하는 말이죠.

이 원작을 화면에 옮긴 < 이수 - Goodbye Again > 는 '연상의 여인에 대한 사랑' 이 주제로 엮어집니다.

평생 동안 스승 슈만의 아내 클라라 곁을 떠나지 않았던 브람스의 사랑도 이런 종류의 연정이었을 터... 

영화 속에서 필립이 폴라를 브람스의 교향곡이 연주되는 콘서트에 초대하도록 한 배경에는 이것을 암시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클래식 음악을 편곡해 영화 사운드트랙으로 즐겨 사용했던 조르쥬 오릭은 브람스 교향곡 3번 F장조, Op.90 중 3악장을 < 이수 - Goodbye Again > 의 사랑의 테마곡으로 사용했죠.

첼로의 선율이 가을처럼 우수에 차면서 감미롭고 서정적으로 흘러나와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며 낭만의 극치를 이룹니다. 

이어 바이올린과 목관에 의해 그 감정은 더욱 골이 깊어지죠. 

브람스는 그렇게, 마저 못 다한 지난날의 추억을 쓸쓸히 독백처럼 이야기하며 그리움을 노래했는지도 모릅니다. 

폴라가 필립의 데이트 신청을 알려준 하녀 가비에게 브람스의 음악이 무언지 알려주는 장면에서 이 3번 교향곡 3악장이 나오죠.

마치 새로운 사랑의 출발을 앞 둔 폴라의 일렁이는 마음을 투영하는 듯 말입니다. 

이 '3악장 포코 알레그레토' 의 테마는 여러 버전으로 변용되며 화면을 감싸안죠.

브람스의 교향곡 중 연주시간이 가장 짧은 3번 교향곡은 모두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3악장은 수묵화같은 색감의 매우 몽환적이며 아름다운 선율로 풀어집니다.

어쩌면 브람스의 모든 교향곡 악장들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다고도 할 수 있는 이 3악장은 둘의 관계가 ‘교향곡 3번의 길이만큼 짧게 끝난다는 암시’ 일런지요? 

아니면 ‘진짜 사랑은 이처럼 아름답고 몽환적이며 한 순간의 꿈 같은 거지만 그래도 한 번은 빠져볼만한 것이다’ 라고 에둘러 말하는 걸까요?

비가 내리는 초가을의 파리가 무대인 이 영화에 너무도 어울리는 배경음악으로 함께 하는 브람스의 포코 알레그레토...

음악은 끝내 세속적인 결합을 이루어내지 못했던 브람스와 클라라, 그리고 필립과 폴라의 사랑을 애틋함으로 추억하게 만들죠.

https://youtu.be/kssWbTDrRhY: feat. 돈 맥클린의 'And I love you so'

아울러 이 사랑의 테마는 실의에 빠진 필립이 들른 재즈바에서 혼자 위스키를 마실 때, 테너 섹스폰의 매혹적인 연주가 가미된 재즈 풍의 비가로 불려집니다. 

“ 더 이상 말하지 마세요, 이젠 작별이에요. 지난 번 같이 또 다시 작별이랍니다. 거짓말은 할 수가 없네요. 이별 후에 다시 또 이별은 오죠.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이지만 아무 의미도 없지요. 사랑은 노래하기 위한 말에 지나지 않지요…” 

- <이수 - Goodbye Again>: 다이안 캐롤의 'Say no more, It's goodbye'
- 'Love is just a word' https://youtu.be/lcFScNiJNWM

자신을 다시는 찾지 말아달라는 폴라에게 어쩔 수 없이 그러겠다고 약속한 필립은, 쓰라린 마음을 끌어안고 단골 바에 들렀던 겁니다. 

그곳에선 흑인 여가수(다이안 캐롤 분)가 사랑에 대하여 너무도 잘 아는 것처럼 노래하지요.

"사랑은 한 단어일 뿐  아무 뜻도 없지
두 남녀가 만나는 걸 고급스럽게 포장한 단어지

사랑은 한 단어일 뿐  즐거움의 시작을 나타내는, 죄를 포장하는 그런 단어일 뿐

'사랑은 한 단어일 뿐(Love is just a word)'  마을 어디에나 있는..."

그리움과 애수가 깃든 멜로디가 풍성한 하모니에 싸여 필립의 상심과 고독마저 전염돼 오는 듯합니다.

이 곡은 영화에 로젠 역으로 출연했던 이브 몽땅, 그리고 제인 버킨을 비롯한 많은 가수들이 각각 다른 버전으로 리메이크해 불렀죠.

- 이브 몽땅의 'Quand tu Dors Pres de Moi' https://youtu.be/KKl_FA3gCgo

- 제인 버킨의 'Baby alone in babylone' https://youtu.be/8BRM8vTqFdo

- 29세 앤소니 퍼킨스 의 < Aimez- vous Brahms... > 인터뷰(1961)
https://youtu.be/ny4MOJD54k0

브람스 교향곡 3번은 4편의 교향곡들 중 가장 드물게 연주되는 작품입니다.

한데 유독 3악장만이 독립되어 높은 대중적 인기를 끈다는 것이 모종의 아이러니처럼 느껴지죠.

당대에 사랑을 받지 못했던...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 가 루키노 비스콘티의 탐미적인 영화 < 베니스에서의 죽음 > 전편에 처연하게 흐르며 유명해졌던 것처럼,

브람스와 대중문화의 접점은 그의 교향곡 3번 3악장으로 수렴되고 있는 것입니다.  

- 안드레스 오로스코 에스트라다 지휘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단
https://youtu.be/u68ETRjNQME

3. 브람스 교향곡 1번 c단조, Op.68
-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사망 2년 전인 1987년)
https://youtu.be/yNqp5QqT3z8

폴라와 필립의 첫 데이트에서 브람스 교향곡 1번이 울렸다는 건 의미심장 하죠.

브람스 교향곡 제1번은 슈만의 '만프레드 서곡'에 감명을 받은 브람스가 무려 21년간의 노력 끝에 완성한 야심작입니다.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브람스의 작품 중에서도 뛰어난 걸작으로 평가받죠. 

곡은 브람스 특유의 우수 어린 선율과 애잔한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운명의 발자국 소리와 같은 1악장을 거쳐 벅찬 환희로 가득한 4악장으로 마무리되는 구성은 ‘운명 교향곡’ 이라 불리는 베토벤의 교향곡 5번과 매우 비슷하죠. 

특히나 4악장에는 브람스가 사랑했던 이들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4악장 도입부의 진중한 선율이 지나가면 오케스트라의 알펜호른 연주자가 가슴이 확 트이는 멜로디를 연주하죠. 

이 선율에 재미난 비밀이 있습니다. 브람스와 클라라는 언젠가 다툰 일이 있었는데, 브람스는 클라라와 화해하기 위해 그녀의 영명축일(靈名祝日)에 맞추어 호른이 연주하는 선율을 엽서에 적어 보냈죠. 

그러고는 헌시(獻詩)를 건넸습니다. “산보다 높이, 골짜기보다 깊이, 나는 당신에게 천 번의 인사를 보냅니다.” 

우리가 즐겨 애송하는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 의 시구를 떠올리게 하는 이 헌시는 사랑을 마주하는 자의 자세를 이야기하고 있죠.

공연장에서 음악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폴라만을 응시하며 "바라만 보는 것은 괜찮지요?" 라고 묻는 필립 처럼 말입니다.

브람스는 자신의 평생 친구이자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요제프 요아힘의 좌우명도 이 교향곡 속에 넣었죠. 

평소 요아힘은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Frei aber einsam)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았는데, 

브람스는 이 말의 첫 글자 'F-A-E' 를 'A-E-F' 로 살짝 바꿔 이 알파벳이 나타내는 '라-미-파' 선율을 결정적인 모멘텀에 사용했습니다.

베토벤이 교향곡 9번 '합창' 을 초연한 이후 유럽의 음악가들에게는 교향곡이라는 장르에서 베토벤의 장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였죠.

브람스가 1번 교향곡을 위해서 오랜 시간이 필요했는데 브람스의 지인이 어느날 그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당신은 왜 교향곡을 작곡하지 않나요?"

그러자 브람스는 "거인이 내 뒤로 뚜벅뚜벅 쫓아오는 소리를 항상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게. 그 기분을 자네는 전혀 상상할 수 없을 걸세" 라고 대답했다고 하죠.

필립이 넘어야 할 산, 사랑을 위해 승리해야 할 대상이 있는 그런 사랑은 너무나 힘들 것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영화 <이수 - Goodbye Again> 에서는 로제가 필립의 그런 대상이 아니었을까요?

필립으로서는 로제의 존재가 사랑을 가로막는 벽이었을 테니까요. 

브람스 교향곡 1번 4악장이 들려오지만 폴라가 로제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는 장면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의미였을 겁니다...

- 안드레스 오로스코 에스트라다 지휘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단
https://youtu.be/cqd4NQ-ppCY

영화 속 클래식 음악을 주제로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칼럼을 쓰며 강의도 하고 있고, 조만간 책으로 출판 예정이라고... 현재 영등포문화재단 혁신경영관으로 재직 중이다.

- 李 忠 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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