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재동 말죽거리에 본사를 둔 SPC그룹이 뒤숭숭하다.
최근 허영인 회장이 '증여세 회피'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은데 이어 검찰 수사관에 '뇌물 제공' 혐의를 받은 한 임원은 구속됐다.
2일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SPC그룹에 대한 수사 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검찰 수사관과 이 수사관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 SPC그룹 임원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검찰 수사관 6급 김모씨는 공무상 비밀 누설, 부정처사후수뢰 등의 혐의가 적용됐고, SPC 임원 백모씨는 뇌물 공여,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김씨는 2020년 9월부터 2023년 6월까지 검찰 수사 대상이었던 SPC그룹 측에 압수영장 청구 내용이나 내부 검토 보고서 등 각종 수사 정보를 누설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수백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를 받는다. 백씨는 김씨로부터 수사 정보를 제공 받고 그 대가를 제공한 혐의다.
검찰은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배임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의 수사를 받을 당시 SPC 측이 검찰 수사관 김씨에게 뇌물을 주고 그 대가로 수사 관련 정보를 얻어내려고 했다는 정황을 포착해 수사해 왔다.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부장 임삼빈)가 수사 중인 SPC그룹 자회사인 PB파트너즈의 ‘민노총 노조 탈퇴 강요’ 의혹을 수사하던 중에 SPC측과 검찰 수사관 사이 뇌물이 오고간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허 회장은 2022년 12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고 2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최경서)는 증여세 회피 목적으로 계열사 주식을 저가에 팔도록 지시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혐의로 기소된 허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조상호 전 SPC그룹 총괄사장, 황재복 파리크라상 대표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들의 주식평가 방법이 불합리하다거나 피고인들이 임무를 위배하고 부당 관여해 최대한 낮게 평가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허 회장과 조 전 사장, 황 대표는 2012년 12월 그룹 내 밀가루 생산업체인 밀다원 주식을 계열사 삼립에 헐값에 매각한 혐의로 2022년 12월 불구속 기소했다. 이 거래로 삼립은 179억7000만원 상당 이익을 확보한 반면 밀다원 주식을 보유하던 샤니와 파리크라상은 각각 58억1000만원, 121억6000만원 손해를 본 것으로 조사됐다.
이 거래는 '일감 몰아주기'에 증여세 부과가 시행되는 2013년 1월 직전 이뤄졌다. 검찰은 허 회장 등이 일가의 증여세를 회피하기 위해 주식을 저가 양도했다고 보고 허 회장에게 징역 5년, 조 전 사장과 황 대표에게 각각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이와 관련, 서울고등법원은 31일 SPC가 계열사를 부당 지원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가 부과한 과징금 647억원을 취소했다.
행정6-2부(부장판사 홍성욱 황희동 위광하)는 이날 오후 2시 파리크라상·SPL·BR코리아·샤니·SPC삼립 등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등 취소소송 선고기일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법원은 파리크라상 등 계열사와 삼립 간의 거래 중 2015년 이전의 밀가루 거래에 대해서만 부당지원 성격을 인정하고 나머지 거래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공정위가 처분한 7개의 시정명령 가운데 재판부는 ▲통행세 거래 ▲밀다원 주식 저가 양도 ▲판매망 저가 양도 및 상표권 무상제공을 포함해 과징금 총액 647억원을 납부하라는 내용의 시정명령을 취소했다. 다만 ‘파리크라상, SPL, BR코리아가 SPC삼립으로부터 유리한 조건으로 구매하는 방법으로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제공해 SPC삼립을 부당하게 지원하는 행위를 다시 해서는 안 된다’는 시정명령은 취소하지 않았다. 공정위 처분에도 일부 적법성이 인정된 것이다.
지난 2020년 7월 공정위는 SPC그룹이 삼립에 대한 부당 지원했다는 이유로 계열사들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647억 원 과징금을 부과했다. 아무 역할이 없는 계열사를 거래 과정에 끼워 넣는 ‘통행세’로 부당 이익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SPC그룹은 총수인 허영인 회장 보고를 거쳐 그룹 차원에서 ▲통행세 거래 ▲밀다원 주식 저가 양도 ▲판매망 저가 양도 및 상표권 무상제공 등의 방식으로 총수 일가 지배 회사인 삼립에 7년간 417억원의 부당 지원이 이뤄졌다고 봤다.
당시 공정위는 계열사들이 삼립을 지원한 이유로 ‘승계 작업’을 꼽았다. 삼립 주식 가치를 높여 2세들이 보유한 지분을 지주사인 파리크라상에 현물 출자하거나 파리크라상 주식으로 교환하는 방법 등으로 파리크라상 2세 지분을 높이는 방식이다. 당시 공정위는 “SPC는 사실상 지주회사인 파리크라상(총수 일가 지분율 100%)을 통해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라 경영권 승계를 위해 파리크라상의 2세 지분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SPC그룹은 공정위 판단에 불복해 2020년 11월 소송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