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 영화 ‘서울의 봄’...권력을 위임받은 자들과의 불편한 동거
[객원칼럼] 영화 ‘서울의 봄’...권력을 위임받은 자들과의 불편한 동거
  • 정연미 기자 kotrin3@hanmail.net
  • 승인 2023.12.12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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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0일 티베트 망명정부 국가 수반인 달라이 라마를 인도의 비밀 기지에서 친견하고 있는 장계황 박사. /@사진=장계황 블로그
지난 6월 10일 티베트 망명정부 국가 수반인 달라이 라마를 인도의 비밀 기지에서 친견하고 있는 장계황 박사. /@사진=장계황 블로그

이념에 민감하던 대학 시절, 1968년 소비에트연방이 간섭하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기억한다. 세계는 이를 ‘프라하의 봄’이라 불렀다. 슬로바키아의 개혁파 알렉산데르 둡체크가 집권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소비에트연방과 바르샤바 조약 회원국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여 개혁을 중단시키면서 막을 내렸다. 프라하의 봄은 꽃을 피우지 못하고 몽우리 상태에서 꺾기고 말았다.

불행하게 한국 사회에도 ‘서울의 봄’이 있었다. 신군부에 의해 유린당한 민주주의를 민중이 막아낸 위대한 민중혁명을 말한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서울의 봄은 사태 당시는 실패한 듯 보였으나, 민주주의 꽃인 직선제를 끌어냄으로써 꽃을 피웠고, 지금은 세계에서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의 아픔은 역사로서 고스란히 남아있고, 당시 신군부에서 악행을 저지르던 자들과 지금도 우리는 동거하고 있으니 이 사회가 얼마나 불편한가?

‘서울의 봄’은 현재 진행형이다. 조선이라는 왕조사회에서 제국사회로, 그리고 강압에 의한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또다시 미 군정에 의한 통치를 받고, 겨우 민주 공화제를 도입하여 주권국가가 된 지 이제 75년이다. 우리는 배달족으로 배달 문화가 있어서 그런지, 불과 얼마 전 왕조와 억압통치를 모두 경험했지만, 홍익정신이 있는 천손으로서 아주 자연스럽게 민주 공화제를 받아들여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을 탄핵할 정도로 발달한 민주국가이다.

민주주의가 꽃피워진 지금의 상황은 저절로 온 게 아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던가? 우리 사회도 3·15 부정선거와 부정부패에 의한 최고 권력자의 망명 사태, 그리고 대학생들에 의한 4·19혁명, 또다시 권력에 눈먼 자들에 의한 5·16 군사 쿠데타와 권력다툼에 의한 대통령의 피살, 이 암울한 시기를 틈타 권력을 잡으려는 12·12 군사 쿠데타, 그리고 시민사회의 민중혁명에 의한 서울의 봄을 맞아 민주화가 정착되었다. 물론 이후에도 국정농단을 끌어 낸 촛불혁명이 오늘의 우리 사회를 만든 것이다.

어쩌면 늘 완성형의 사회란 없다. 인간 개인의 탐욕과 집단의 권력은 힘을 과시하려는 본능이 있다 보니 사회의 약한 고리를 움켜쥐고 본능에 충실하곤 한다. 지금 사회에서 검찰 권력이 그렇다. 기소독점권을 가진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은 ‘서울의 봄’을 이루려는 43년 전의 모습과 사회현상이 다르지 않다고 하는 것은, 나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 거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리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권력이란 쟁취하는 것이 아니고,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일시적인 권한에 지나지 않는다. 5.16쿠데타나 12.12쿠데타는 권력을 쟁취하려는 무모한 생각으로부터 시작된 망령된 일이었다. 국민 개개인에게 있는 천부의 권력을 무력으로 어찌 뺏아갈 수 있단 말인가? 국민이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권력을 선거를 통해 위임받아 잠깐동안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힘과 억압으로 영구히 뺏아 쟁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설령 그럴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우리 사회는 과거 ‘서울의 봄’ 경험을 통해 학습효과가 있어 그런지 비교적 민주주의가 빠르게 정착되었다. 그리고 공화제의 특성을 잘 살려 법치국가로서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늘 악마가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래서 역사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이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물이 아니다. 수많은 기록물 중에서 가치가 있는 것은 개념화하여 정립되는 것이 역사다. 역사는 단순히 표면의 현상을 보는 것이 아니다. 현상의 이면을 보고 분석하는 것이다. 역사는 과거이지만, 역사학은 미래학이기에, 이면에 있는 것을 분석하여, 개념화하여, 미래 사회에 반영해야 역사야 비로소 가치가 있어지는 것이고, 살아있는 역사가 되는 것이다. 

잘 만들어진 영화로 평가받는 최근 개봉한 ‘서울의 봄’ 영화는 우리 사회에 참 많은 것을 던져주고 있다. 단순히 하룻밤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현상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민중들에게 던져주는 묵직한 메시지가 있어 중요한 것이다. 잘 짜여진 사회의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권력을 총과 칼에 의해 강압적으로 쟁취했을 때의 결말을 제대로 보여주는 역사 흐름의 연장이자 교훈이다. 

역사를 통해 보면 늘 특정 집단의 권력욕이 문제이다. 지금 한국 사회의 권력을 쥐고 흔드는 ‘노론의 권력 문화’나 12·12사태 때의 ‘하나회’나 모두가 특정집단이 권력을 독점화하려 할 때 나타나는 불미스런 현상들이다. 권력은 국민만이 가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군부나, 검찰이나 자본이, 또는 특정 언론이 집단화하여 권력을 가질 때 그 사회는 늘 문제가 만들어진다. 오로지 권력은 국민에게만 있다. 시스템에 의한 법치국가에서 검찰권력조차 위임받은 권한에 불과하다.

권한을 위임받은 권력자나 권력기관은 권력을 국민에게 있음을 인식하고, 위임받은 권한 내에서 행사해야 건전한 법치국가가 되는 것이다. 선거라는 제도는 권력을 위임하는 과정이자 통로이다. 그러나 검찰 권력 등은 법치의 제도권 내에 있으면서도 법치를 악용 또는 남용함으로써 사회악으로 변질되곤 하는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잠시의 쥔듯한 권력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면 안된다. 영화 ‘서울의 봄’에 주역들이 아직 이 사회에 권력층으로 존재하고 있다. 참 불편한 진실이다. 불법으로 잡은 권력으로 자본주의사회의 시스템을 이용하여 영원한 권력을 누리려는 자들은 언젠가 단죄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에 앞서 영화를 통해서라도 이 불편한 진실을 온 국민에게 알려 줌으로서 그들의 행태를 꼬집고, 반성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럽기도 하다. 더 이상 ‘서울의 봄’ 같은 사회현상이 오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에서 철저히 배워야 한다.

@글쓴이=북촌 장계황 / 행정학박사/ 한국역사영토재단 이사장/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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