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에게 1천3백억 원 넘는 돈을 물어주라는 국제 상설중재재판소(PCA) 결정이 나왔다.
론스타에 이어 또다시 외국 투기자본에 거액을 배상하라는 결정으로 법무부는 PCA 통보를 받은 지 5일째 되는 26일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 중”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PCA는 지난 21일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한국 정부간 투자자-국가 분쟁(ISDS) 소송에서 5년만에 한국정부가 엘리엇에 5천358만 달러(약 690억 원)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정 결과를 통보했다. 엘리엇의 소송비용 372억 원과, 지난 8년간의 이자까지 더하면, 총 지급액은 1천300억 원을 넘게 된다.
이는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가 뇌물을 받고 삼성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불법적으로 돕는 바람에 삼성물산 주주였던 엘리엇이 손해를 봤다는 주장을 일부 받아들인 결과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삼성물산 3대 주주였던 엘리엇은, 주주인 자신들이 손해를 본다며 합병에 반대했으나 다른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결국 합병은 성사됐고, 삼성은 이재용 회장으로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져 삼성 뇌물을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민연금에 합병 찬성을 지시하며 위법하게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자 엘리엇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했고, 5년여 만에 그 판정이 나왔다.
엘리엇은 "최고위층 부패 범죄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승리한 최초의 분쟁 사례"라며 "성공적인 결과"라고 자평했다.
반면, 법무부는 "엘리엇은 1조 원 가까이 요구했지만, 청구액의 7%만 받아들여졌다"며, "우리 정부의 93% 승소"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무리한 손해배상을 요구해 일부를 받아내는 게 국제 투기자본의 속성이라 한국측의 승소로 보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엘리엇은 "박근혜 정부의 삼성물산 합병 개입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장관이 검찰 시절 밝혀냈던 일"이라며 "이의를 신청해도 소송비용이나 이자만 늘어날 것"이라며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앞서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물어줬던 손해배상액도 2,800억원 배상 판정이 나왔고, 다른 국제 분쟁 소송들도 5건이 더 남아 있어 이들 금액을 다 합치면 6,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과거 정부의 잘못된 결정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국민 혈세로 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에게 명백히 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번 엘리엇 소송의 경우, 박근혜 정부가 삼성 측 뇌물을 받고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줬던 게 빌미를 제공한 만큼 박 전 대통령, 또는 이재용 회장이 돈을 물어내야 한다고 일부 통상 전문가나 시민단체는 주장하고 있다.
또 15년 전 한미FTA 협상 때 수용한 투자자 보호 조항이 초국적 자본의 약탈적 수단으로 현실화된 만큼 이를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법무부는 이번 엘리엇 사건의 판정문을 면밀히 분석해 28일 안에 취소 신청 여부를 결정해야 하지만 2심인 영국 고등법원의 판단이 한국 정부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시각이 있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