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보석'으로 유명한 태광그룹 이호진(사진) 전 회장이 수십억원 배임 횡령 혐의로 또다시 경찰수사 대상에 올랐다. 지난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지 약 두 달 만이다.
이 전 회장은 앞서 2011년에도 회사 자금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그는 7년 넘게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 ‘황제 보석’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24일 업무상 배임 및 횡령 등 혐의로 이 전 회장의 자택과 서울 종로구 흥국생명 빌딩에 있는 태광그룹 경영협의회 사무실, 경기 용인시에 있는 태광CC를 압수수색했다.
경찰의 내부제보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임직원들 계좌로 허위‧중복 급여를 입금한 뒤 이를 빼돌리는 수법으로 20억원 이상을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는다. 계열사 임원의 경우 겸직이 금지돼 있지만, 이를 어기고 급여를 이중으로 받게 했다는 것이다. 이중 급여 의심 시점은 2015~2018년으로 전해졌다.
이번 압수수색 대상지 중 한 곳인 경영협의회는 태광그룹 각 계열사 대표가 모여 그룹 주요 안건을 논의하는 회의체로 경찰은 이들 임원의 계좌도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 전 회장이 태광CC를 통해 계열사를 부당 지원했는지도 같이 들여다보고 있다. 태광CC가 진행하지 않은 공사에 대해서까지 공사비를 집행해 태광CC가 손해를 입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번 이 전 회장 수사의 시발점이 된 내부제부에는 이 전 회장과 친족이 100% 소유한 티시스가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그룹의 건물, 부동산, 골프장 등을 관리하고 있는 자회사이다. 앞서 태광은 지난 9월 대한 내부 감사 과정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감사를 전 계열사로 확대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그룹 실세로 꼽히던 김기유 티시스 대표 겸 경영협의회 의장이 해임됐다.
김 전 대표는 이 전 회장이 검찰 수사 등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 그룹 경영기획실장으로 계열사 업무를 총괄해 왔으며, 이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 불리던 인물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롯데홈쇼핑 사옥 매입 과정 등에서 이 전 회장과 김 전 대표 간에 갈등이 불거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태광은 롯데홈쇼핑의 양평동 사옥 매입에 찬성했다가 이 전 회장 사면 이후 반대 입장으로 바꾸고 이사회 결의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뒤 공정위 신고에 나섰다. 지난 5월 경제개혁연대 등은 태광그룹이 티시스의 골프장 회원권 판매를 위해 계열사를 부당하게 동원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이 다시 경찰 수사선에 오르면서 태광그룹은 오너리스크를 마주하게 됐다. 이번 수사로 이 전 회장의 경영 복귀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태광은 이날 압수수색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고 "경찰의 압수수색에 적극 협조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제기된 의혹이 해소될 수 있도록 경찰의 수사에 성실하게 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 전 회장은 이전에도 회사 자금 횡령, 배임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회장은 2011년 1월 태광산업이 생산하는 섬유제품을 빼돌려 이른바 ‘무자료 거래’를 통해 회사자금 400억여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이후 2019년 6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을 확정받아 2021년 10월 만기 출소했다.
이 과정에서 총 7년8개월의 재판 기간 중 63일만 수감돼 ‘황제보석’ 비판을 받았다. 구속 기간중 간암 치료 이유로 풀려나 음주·흡연을 하고 떡볶이를 먹는 모습이 포착돼 논란을 빚었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은 2012년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대표이사를 포함해 그룹 내 모든 법적 지위와 회장직에서 물러났고, 지난 8월 광복절 특별사면 명단에 올라 복권됐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 전 회장의 광복절 특사 심사 때 태광그룹 임원을 남편으로 둔 이노공 법무부 차관이 참여한 것은 이해충돌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제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