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이후를 상상하는 기획전 ≪몸이 선언이 될 때≫
낙태죄 폐지 이후를 상상하는 기획전 ≪몸이 선언이 될 때≫
  • 이상호 기자 sanghodi@hanmail.net
  • 승인 2021.10.08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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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와 개정 과정에서 광장에 모였던 여성들의 말을 예술적 실천으로 담아내고자 뜻 모은 여성 예술가들 공동기획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는 기획전이 열린다.

≪몸이 선언이 될 때≫(총괄기획: 김화용, 공동기획: 이길보라)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1년도 시각예술창작산실 우수전시지원작으로, 오는 13일부터 11월 3일까지 서울 통의동 보안1942 아트스페이스 보안 3에서 개최된다.

강라겸 난자 두 개로 태어난 새끼 쥐의 꿈을 꿔 2021 혼합 설치

≪몸이 선언이 될 때≫는 ‘낙태죄’ 폐지 이후를 다각적으로 모색하는 논의의 장을 열고자 한다. 2021년 한국은 68년 만에 ‘낙태죄’ 없는 국가가 되었지만, ‘낙태죄’ 뒤에 가려졌던 문제들은 아직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 이번 전시는 위계와 배제, 음지화된 다양한 몸의 경험들, 알 기회를 빼앗긴 정보와 건강권, 편견에 눌려 말하지 못했던 여성‧소수자의 섬세한 감정 등을 포착해 가시화한다.

강라겸 소원도 2013 실크 위에 잉크와 금분

≪몸이 선언이 될 때≫는 예술적 실천을 통해 ‘광장의 말’을 담아내고자 뜻을 모은 여성 예술가들에 의해 기획됐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로 이어진 개정 논의와 지난해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여성들을 다시 광장에 나오게 했고, 그 과정에서 이번 전시의 기획도 시작되었다.

이길보라_My Embodied Memory_2019_HD 단채널 영상

이번 전시에는 국내외 작가 8팀이 참여해 임신중지를 포함하는 몸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뿐만 아니라, 개인에 대한 시스템의 통제, 여성의 몸을 재생산의 도구로 환원하는 관점, 퀴어 여성의 재생산권리 등을 전면에 다룬다.

전규리 다신, 태어나, 다시 2020_단채널 영상
전규리 산증인 2021 단채널 영상
셰어 울퉁불퉁한 연대기 터져나온 저항, 몸의 발화들 2021 가변 설치
에이피피(거리 투쟁의 아카이브) 파업 신문 2020 신문 인쇄물
올라 야시오노프스카 붉은 번개 2020 포스터 설치
일렉트라 케이비 시위 피켓 AAA 2021 사탕수수용지에 실크스크린
일렉트라 케이비 핵친족주의 이후의 퀴어적 변화들 2021 혼합 매체
키라 데인 & 케이틀린 레벨로 미즈코 2019 HD 단채널 영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이하 셰어)는 2017년 발간했던 책 ≪배틀그라운드≫에 수록한 연표를 확장한 작품, <울퉁불퉁한 연대기: 터져 나온 저항, 몸의 발화들>(2021)로 참여한다. 낙태죄, 우생학, 쾌락, 장애, 여성, 퀴어 등 몸을 둘러싼 여러 이슈/위치의 교차와 상호작용에 주목하며, 하나의 공간을 구성하는 세 가지 연표를 제시한다.

공동기획자인 이길보라는 2016년 정부가 불법 낙태수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했던 때, 칼럼 ‘#나는_낙태했다’를 쓴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My Embodied Memory>(2019)를 통해 칼럼에서도 언급했던 엄마, 할머니가 임신중지 경험을 함께 말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든다. 강라겸의 신작 <난자 두 개로 태어난 새끼 쥐의 꿈을 꿔>(2021)는 두 마리의 엄마 쥐로부터 단성 생식으로 새끼가 태어났다는 논문에 착안해 남성에 의한 수정 없이도 가능한 재생산에 대한 SF적인 상상을 펼쳐낸다. 전규리는 1930년 태어났다 일찍 죽고, 1990년 선택적 여아 낙태로 태어나지 못했다가, 2050년에 드디어 다시 태어난 여성을 상상하며 과거와 미래의 백말띠 여성을 소환하는 <다신, 태어나, 다시>(2020)와 1950년대 전쟁 포로의 몸에 새겨졌던 반공문신의 역사를 추적하며 개인에게 가해졌던 권력의 폭력을 증언하는 신작 <산증인>(2021)으로 참여한다.

국외 작가로는, 2015년 들어선 폴란드 우익정당의 소수자 차별정책에 저항하며 투쟁했던 역사를 가감 없이 기록하고자 결성된 에이피피(거리 투쟁의 아카이브)가 참여한다. 에이피피의 <파업 신문>(2020~)은 ‘낙태죄’ 반대를 위한 여성 파업 시위 때부터 만들어졌으며, 신문의 기능을 하는 동시에 시위 현장에서는 피켓으로, 거리에서는 포스터로 사용되고 있다. 올라 야시오노프스카의 <붉은 번개>(2020)에서 볼 수 있는 붉은색 번개 모양은 여성 파업 투쟁의 상징 같은 이미지가 된 디자인이다. 2016년 인종차별 시위를 위해 처음 만들어졌고, ‘낙태죄’ 반대 시위에서 다양하게 변형되어 피켓, 포스터, 티셔츠, 그래피티 등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일렉트라 케이비의 <시위 피켓> 시리즈(2017~) 중 이번 전시의 입구에 설치되는 포스터는 2017년 트럼프 정부에 항의하며 시작된 여성 행진에서 작가가 직접 제작해 사용했던 것으로, ‘I WAS NEVER YOURS’라는 선언적인 문장이 전시의 타이틀과 조응한다. <핵친족주의 이후의 퀴어적 변화들: 돌봄과 상호 원조의 급진적 가족 구조, 사이보그와 여성 신을 중심으로>(2021)는 다양한 형태의 파트너십을 제시하면서, 트랜스젠더 작가 레드 워시번이 경험한 성전환 과정을 사진과 글을 통해 보여준다.

일본 나라에서 작업하는 일본계 미국인 작가 키라 데인과 브루클린에서 작업하는 감독 케이틀린 레벨로는 <미즈코>(2019)에서 임신중지를 경험하는 과정과 그 이후에 찾아오는 다양하고 섬세한 감정들을 묘사한다. ‘미즈코’는 물의 아이, 뱃속에 잠시 살았지만 태어나지 못한 아이를 지칭하는 단어로, 일본 문화에는 미즈코를 애도하는 공양이 존재한다.

한편, 전시 기간 온라인을 통해서는 퍼블릭 토크가 진행된다. 셰어의 활동가들과 ‘낙태죄’로 인해 수면 위로 올리지 못했던 권리들을 돌아보고, 바르샤바 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세바스티안 시코키를 초대해 임신중지 전면금지법을 시행하는 폴란드의 상황과 그를 경유하는 동시대 아티비즘을 살펴본다. 참여작가 이길보라, 전규리는 평론가 조혜영과 함께 공적인 역사에 사적인 역사를 엮어내는 여성 작가들의 시도에 관해 이야기하고, 참여작가 강라겸, 정의당 국회의원 류호정, 타투이스트 도이(김도윤)는 문신합법화운동, 예술과 정치를 횡단하는 몸의 결정권과 소유권에 대한 대담을 나눌 예정이다.

전시가 열리는 보안1942의 보안책방에서는 사전연구자료 및 전시 주제와 관련된 출판물, 작품과 연계된 진(zine)이 함께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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