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갑자기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사과를 하자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이 부회장은 이날 서울 서초구 삼성 서초사옥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삼성의 기술과 제품은 일류라는 찬사를 듣고 있지만, 삼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 저의 잘못"이라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이 부회장의 이번 사과는 지난 3월 11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법감시위)가 삼성의 경영권 승계 의혹, 노조 와해 논란 등과 관련해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이에 대한 개선 방안 등을 담은 내용을 이 부회장이 국민들 앞에서 직접 발표하라고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준법감시위는 삼성 계열사의 준법경영을 감시·평가하는 독립 기구로,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제1형사부(재판장 정준영)가 삼성 측에 ‘실효적 준법감시제도 마련’을 제시하자 삼성 7개 계열사가 협약을 맺어 출범시킨 위원회다. 김지형 전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대국민 사과가 앞으로 있을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일부에서는 이 부회장의 진행중인 국정농단 사건 재판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서울고법 제1형사부는 지난 1월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의 배임·횡령 혐의 항소심에서 ‘준법감시실 설치’를 참작해 형량을 절반으로 낮춘 바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을 예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러한 기류로 보면 집행유예도 가능하다는 예측이 높아진다. 현재 이 부회장의 뇌물·횡령 금액은 50억 원이상으로 이 경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5년 이상 징역이나 무기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다만 재판부가 정상 참작 등을 고려해 ‘작량감경’을 적용할 경우 이 부회장의 형량은 징역 2년 6개월까지 줄어들 수 있고 집행유예도 가능해진다. 작량감경은 법률상 감경 사유가 없어도 판사 재량으로 형량의 상한과 하한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은 지난 1월 17일을 끝으로 앞으로 언제 재판이 다시 열릴지 알 수 없는 상태다.
비록 이날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 부회장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 1부에 낸 기피신청 사건에 대한 재항고 신청이 대법원에 접수됐지만 언제 기일이 잡힐 지 예측하기 어렵다. 기피신청 재판 등은 불구속 사건의 경우처럼 따로 처리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아 재판기일을 알 수 없다는 게 법조계의 통례다.
한 변호사는 “이 부회장의 사과는 국정농단 재판 중 만들어진 ‘준법감시위’ 권고에 따라 이뤄졌지만 정작 재판은 언제 다시 열릴지 알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회장이 이날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은 4.15 총선이후 여론에 힘을 받은 여권이 재판 진행을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데 따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박영수 특검팀 선임특별수사관을 지낸 전종원 변호사(법무법인 정률)는 "상법상 삼성의 준법감시인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특히 준법감시위는 원칙이나 규정 등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설치돼 그 성격이 애매하다"면서 "실효성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우리나라 양형 기준에선 양형 요소로 채택하기에는 범죄 후 정황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와 관련해 "변명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도덕적 책임 회피와 법적 자기 면죄부를 위한 ‘구색 맞추기식’ 사과"라고 혹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