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을 걷습니다.
마을 돌담길 옆 누군가의 방이었던 창문을
담쟁이덩굴이 빗장을 걸었습니다.
저 방에서 꿈을 꾸던 누군가가 있었겠지요?
그리웠던 천연기념물 모밀잣밤나무 숲에 듭니다.
나무들의 제국,
늘 짱짱하게 푸른 잎과 억센 가지로
어깨를 걸고 있는 나무들의 안전가옥.
그 숲에서 나오기 싫어
한참이나 한참이나 서성거렸습니다.
숲을 나와
큰부리까마귀와 황조롱이들이
바람을 타고 허공을 가르는 섬을 걷습니다.
섬은 꼭 등 뒤에 풍경을 숨겨 놓아요.
찾아 나서지 않으면 보여주지 않는 귀한 선물.
바다로 흘러내린 아스라한 절벽,
파도와 속삭이다 구불구불 자리를 내어준
바위가 빚은 풍경들.
밤을 뒤척이게 했던 달빛과
오래 서성이던 모밀잣밤나무 숲,
한나절을 걷던 길과
가르랑 거리던 파도소리를 두고 다시 돌아옵니다.
아침이 오면 어제는 어느새 마음 저 편으로 사라지고 나는 또 새로운 섬을 꿈꾸겠지요?
그리운 욕지도여, 그러면 안녕!
이상호 기자 sanghod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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