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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읍성 사직단 구조 고창군(군수 심덕섭)이 ‘무장읍성 사직단’ 발굴과 관련해 2일 현장을 공개했다.고창군은 무장읍성 사직단의 정확한 규모와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 6월 4일부터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사직단은 토지를 관장하는 사신(社神)과 곡식을 주관하는 직신(稷神)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기록에 따르면 지방사직단은 1406년(태종 6) 이후에 설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장읍성은 무송현과 장사현을 통합되면서 새로이 쌓은 성으로 1417년(태종 17)에 축조되었으며. 무장읍성 사직단도 이 시기에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지방사직단에 대한 발굴조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나 무장읍성의 사직단은 1991년 무장읍성이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동시에 지정될 만큼 고창군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곳이었다. 발굴조사 결과, 제사를 지냈던 제단과 제단을 보호하기 위한 담장, 유문 등 지방사직단의 전반적인 형태를 알 수 있는 모습이 확인되었다. 사직단은 무장읍성의 북서쪽에 있는 월림마을 뒤편의 낮은 언덕을 깎아 지면을 다진 다음에 담장과 제단을 만들었다. 제단의 규모는 한 변의 길이가 약 7.5m로 깬돌을 이용하여 쌓았는데 현재 1~2단의 단 시설이 남아 있다. 제단의 내부는 적갈색 및 회갈색의 흙을 이용하여 다져 단을 만들었다. 제단을 둘러싼 담장은 한 변의 길이가 약 17m 정도인 방형의 형태이다. 담장의 축조는 깬돌과 기와, 흙을 이용하여 혼축하였으며, 3~4단 정도 남아 있다. 담장의 안쪽벽은 넓은 돌을 칸막이처럼 세워 지지력을 더하고 그 사이에 작은 돌을 채워 쌓은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담장 윗부분에는 기와를 덮어 담장을 보호했던 것으로 보인다.출입시설은 네 방향에 걸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서쪽 출입시설은 파괴되어 확인되지 않는다. 특히 북쪽 출입시설에서 북쪽 제단의 중앙까지 길이 약 8m, 폭 80㎝의 통행로가 확인된다. 깬돌을 이용하여 경계를 표시하였으며, 바닥은 흙으로 채워져 있다. 심덕섭 고창군수는 “이번 조사는 전북지역에서 최초로 이루어진 사직단 발굴조사로 출토유물이나 기록으로 볼 때 무장읍성의 축성과 동시에 사직단을 조성했다는 것을 학술조사를 통해 증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고창은 발굴조사된 자료를 근거로 정비·복원을 진행하여 무장읍성과 연계한 역사문화자원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문화 | 이세호 기자 | 2024-07-03 11:43

해남군 북일면 거칠마토성 시발굴조사 중 마한시대 고대 제사의례공간인 ‘소도(蘇塗)’의 발전된 형태가 발굴되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해남군은 2023년 국가유산청 역사문화권 중요 발굴유적 공모에 선정되어 (재)마한문화연구원, 동신대학교 영산강문화센터와 함께 지난해 말부터 시발굴조사를 실시한 데 이어 21일 시발굴조사 현장공개설명회를 열었다.『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기록(기원후 3세기대)에 따르면 마한의 문화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은 별읍(別邑)인 소도의 존재이다. 일종의 신성불가침 지역으로, 죄인이라도 도망하여 숨으면 잡아가지 못하였다고 한다. 소도에 대해서는“입대목현령고사신(立大木懸鈴鼓事柛)”기록이 남아있는데 커다란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걸어 신령을 모시는 풍습인 입대목(立大木) 제사의례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해남군에 따르면 이번 시발굴 유적은 거칠매산 정상부를 감싸며 담처럼 토루를 쌓아 성역을 구분하였으며, 전체 둘레가 385m, 면적은 약 6천여㎡에 이른다. 거칠매산 정상부에는 방형 제단(장축길이28m, 단축길이 24m)이 확인되었다. 제단 인근에서는 3개의 출입시설(문지 및 계단)과 입대목을 세우는 대형 기둥 구멍(지름 110㎝, 깊이 90㎝), 지하수가 용출되지 않은 대형 점토집수지(길이 8m, 깊이 2.9m) 등이 발굴되었다. 점토 집수정(23일 현장설명회) 방형단 모습 북문지 출입시설 모습 입대목 대형기둥 구멍(21일 현장설명회) 특히, 대형 집수지는 일반적인 산성 내 집수시설과 달리 지하수나 지표수가 모일 수 없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점토를 두텁게 발라서 물이 지하로 스며들지 못하게 하였다. 인공적으로 물을 담아 바닥에는 퇴적물이 쌓여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매우 엄격하고 철저하게 유지 관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대형 기둥 구멍은 거칠매산의 가장 높은 곳에 제단을 마련하고 기둥을 세웠다는 점에서 입대목 의례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제단에서 철제방울이 출토되어 이곳이 의례공간이었음을 뒷받침하고 있다.거칠마토성은 고대 해양항로를 관장하며 해양제사를 지내던 세력의 제사의례공간으로 추정되는데, 지금까지 발견된 제사유적 사례 중 최대 규모의 특수 성역공간으로 『삼국지』 위서 동이전 등에 기록된 마한의 ‘소도(蘇途)’와 유사하며 기원후 5 ~ 6세기대 유적의 추정연대를 감안하면‘소도’의 발전된 형태로 판단된다.이외에도 유적에서는 거칠마 고분 1기와 수혈 집자리군, 당시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질인 패각층 등이 확인되고 있어 대규모 고대마을이 형성되었음을 시사하였다. 해남 거칠마토성 원경 및 북일연안권 유적분포 모습 해남군 북일면 일대는 독수리봉고분, 밭섬고분, 신월리고분, 장고봉고분 등 해양교류 사를 확인할 수 있는 많은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으며, 한반도와 중국, 일본열도의 동북아 고대 세력들이 활발하게 사용하던 서남해 해양항로의 거점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이번 시발굴조사를 통해 북일면 일대가 국제해상교류의 중심지로서 다시 한번 재조명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해남군은 일반인과 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현장공개설명회와 답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발굴조사 후 군청 군민광장에서 유물 속보전의 형태로 특별전을 개최하는 등 발굴성과를 군민과 함께 공유하고 역사자원의 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모색해 나갈 계획이다.

문화 | 홍성표 기자 | 2024-06-25 14:38

선비충의 문화관 조성사업 조감도 (사진=청양군 제공) 청양군(군수 김돈곤)은 면암 최익현 선생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모덕사를 역사문화교육체험형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선비충의문화관 조성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12일 밝혔다.지난 11일에는 김돈곤 군수가 공사 현장을 방문해 사업 진행을 점검했다. 이 자리에서 김 군수는 모덕사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중대한 사업인 만큼 건설사업관리단을 비롯한 시공사에 공사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당부했다.선비충의문화관 조성사업은 충청유교문화권 광역관광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48억 8,500만원(국비 53억 1,000만원, 지방비 95억 7,500만원) 사업비를 투입해 2025년 준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시설은 모덕사 자원을 활용해 면암기념관, 숙박동, 서화의 숲 정원, 면암의 길 등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면암기념관은 학문 형성 과정과 사상을 소개하는 전시실을 설치하고 학생들을 수용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건립할 예정이다. 한식목구조로 지어지는 체험형 교육관으로 면암 최익현 선생의 유물과 업적들을 둘러보고, 유배 체험과 최익현 선생 일대기 영상물을 시청할 수 있다. 특히 모덕사 소장유물 기록화 사업을 통해 발견된 고문헌, 민속유물 등 3만여 점 중 가치가 있는 유물은 전시콘텐츠로 반영된다. 또한 숙박동 건립으로 1박 2일 이상의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체류형 관광을 도모한다는 그림이다.군은 선비충의문화관 조성 설계 초기 단계부터 소프트웨어인 콘텐츠를 선행 검토한 후 하드웨어인 건물을 짓는다는 계획하에 자문회의 등 여러 차례 토의를 거쳤다. 앞으로 모덕사 인지도 분석을 바탕으로 기존 추모의 공간에서 가족 단위, 젊은 층을 어필하는 역사문화체험 관광시설로 거듭난다는 계획이다. 또한 최익현 선생의 일화 등을 활용해 현재 경직된 모덕사의 이미지를 변화시킬 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하게 된다.김돈곤 청양군수는 “청양의 역사적인 인물인 면암 최익현 선생의 사당 모덕사에 역사, 문화, 교육, 체험, 관광을 아우르는 복합공간인 선비충의문화관이 건립되면 많은 관람객들이 찾을 것”이라며 “청양군의 대표적인 문화유산 관광지역으로 새롭게 조명될 것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문화 | 한광현 선임기자 | 2024-06-13 11:02

보령석탄박물관에서 국보순회전<모두의 곁으로 금관총 금관, 그리고 아사지왕> 개막 커팅식 모습(사진=보령시 제공) 금관총 금관 (사진=보령시 제공) 이사지왕명 고리자루 큰칼 (사진=보령시 제공) 금관총 금 허리띠 (사진=보령시 제공) 보령시는 지난 5일 보령석탄박물관에서 국보순회전<모두의 곁으로 금관총 금관, 그리고 아사지왕> 개막행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김동일 시장을 비롯해 은화수 국립부여박물관장, 이수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등 주요인사와 학생 50여 명이 참석했으며, 개막인사, 축사, 테이프커팅 및 기념촬영, 전시관람 순으로 진행됐다.이번 전시회는 국립중앙박물관 주최, 보령석탄박물관 및 부여박물관이 공동으로 주관하여 추진됐으며, 6월 6일부터 9월 1일까지 보령석탄박물관 1층 상설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금관(국보), 금허리띠(국보), 이사지왕(尒斯智王)명 고리자루 큰칼 등 총 3점의 경주 금관총 출토 유물을 통해 신라 시대 왕권 강화의 모습과 뛰어난 금 세공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문화 | 한광현 선임기자 | 2024-06-09 15:15

고구려의 장수왕이 옮긴 새로운 수도 평양은 요하주변의 지금의 요양(遼陽) 근처였음이 실증적으로 확정됐다. 이 곳은 신라가 새로 확보한 영토의 시작점이기도 하다.통일신라는 7년간의 나당전쟁을 통해 당나라를 매소성 전투에서 크게 이기고 당을 지금의 갈석산을 흐르는 난하 서쪽으로 완전히 몰아냈다.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소장 이덕일)가 자유발행제에 따라 내년 광복 80주년을 맞이해 발행한 ‘대한민국 역사교과서(전2권)’에 실린 한국 고대사의 한 토막이다.1,2권으로 출간된 ‘대한민국 역사교과서’는 최근 홍산 등 중국서 발굴된 유적과 유물을 풍부하게 제시하는 등 사실 전달에 주력해 과거 일제가 왜곡한 한국 고대사의 정통성 복원에 주력했다.또한 구석기시대부터 현대까지 100만년, 단군조선 수립부터 현재까지 반만년의 역사를 일관되게 서술해 그간 한국사에 대해 의문이 있거나 앞뒤가 맞지 않아 이상하게 느낀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갈증을 해소 할 수 있도록 했다.이 교과서는 우선 삼국유사의 기록대로 서기전 2333년 단군에 의해 고조선이 건국됐음을 사실로 인정한다. 아울러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등을 사실로 받아들여 고조선 역사의 통시적 복원을 시도한다.상(은)나라 왕족이었던 기자는 '동래설'에 따라 서기전 12세기 (고)조선으로 넘어 와 고대 요동(난하 동쪽) 지역에 기자조선을 세웠으며, 위만은 한나라와 조선과의 전쟁이 격심하던 서기전 3세기 전후 패수(난하)를 넘어 와 기자조선의 준왕을 쫓아내고 비슷한 지역에 위만조선을 세운다. 결국 중국의 진ㆍ한과 고조선과의 실질적 국경선은 지금의 중국 북경 동쪽의 난하가 되는 것이다.  고대 낙랑군의 위치@사진=교과서1권 75p 위만조선은 나중에 한나라 무제에게 침략당해 서기전 108년 멸망하지만 거대한 제후국이었던 고조선은 지금의 요동을 중심으로 건재했다. 다만 여러 제후국들이 힘을 키워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나면서 고조선은 부여 한(삼한) 옥저 동예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여러 나라로 분리되는 '열국시대(列國時代)'를 맞는다.  5세기 말엽까지 무려 600년간 합병과 이동, 분국 등으로 복잡하게 전개되던 열국시대는 결국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5국 중심으로 재편된다. 부여(494년)와 가야(562년)가 멸망한 시기 이후로 치면 3국 시대는 불과 100여년의 짧은 시기였다는 게 이 책의 주요 내용중 하나이다.한반도 남부를 빼고 현재 중국의 하북성 일대를 포함한 고조선의 옛 영토를 회복한 나라는 고구려이다. 고구려는 다물(多勿)사상에 따라 한과 위 등 중국 옛 왕조들과 선비족 등 북방 민족과 빈번히 충돌하면서 여러차례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광개토대왕에 이르러 고대 요동지역과 내몽골 지역을 포함한 동아시아 최대 영토를 개척하며 숙신(말갈) 거란 등을 거느리는 황제국으로 등극한다.중원에 수와 당의 통일국가가 들어서면서 고구려도 결정적 위기를 맞는다. 이들 제국과 천자국의 지위를 놓고 다투던 고구려는 대부분의 전쟁에서 승리하지만 신라가 당을 끌어 들이면서 백제의 사비성(660)이 무너지고 이어 평양성(668)이 함락되면서 멸망의 비운을 맞는다. 통일신라는 초기 대부분의 고구려 영토를 회복했다가 발해의 건국으로 만주 남부 일대로 후퇴한다@사진=교과서 1권 340p 여기서 평양성의 위치가 중요하다. 이 책은 장수왕이 천도한 고구려의 마지막 수도 평양이 지금의 북한의 평양이 아니라 만주에 있는 요녕성 요양(遼陽)으로 비정한다. 신라가 당과 싸울 때 첫 공세가 압록강을 건넜다는 여러 사서의 기록이 그 근거이다. 최치원이 쓴 진성왕의 <양위표>에도 "본국(신라)은 백이숙제의 고죽국 강역과 연달아 있다"고 말한 기록도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이후 신라가 매소성(한탄강이 아니라 요하 주변 추정) 등지에서 당나라를 격퇴하고 통일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신라의 강역은 한반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요양 일대를 포함하고 고대 요동(난하) 지역에 이르는 광대한 범위에 달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다만 곧이어 등장한 고구려와 말갈계 유민이 연합해 세운 대진국(발해)에 밀리면서 통일신라의 영토는 만주 남부지역으로 후퇴하면서 남북조시대가 열리고 두 나라는 요녕성의 니하(송하강의 지류)를 경계로 삼는다.  고려는 부침은 있었지만 대체로 현재의 만주에 있는 철령과 공험진을 경계로 북방민족들과 대치했다.@사진=교과서1권 432p 이어 등장한 고려는 부침은 있었지만 대체로 현재의 만주에 있는 철령(심양 남쪽)과 공험진(흑룡강성 영안 부근)을 경계로 북방민족들과 대치했다. 서희가 개척한 강동6주나 윤관이 쌓은 동북9성은 모두 만주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원나라 때 일시적으로 고려가 이 지역을 잃기도 했지만 공민왕의 수복작전으로 완전히 회복했다.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를 계기로 촉발된 고려와의 분쟁에서도 비록 이성계가 위화도(압록강이 아닌 요하의 지류)에서 회군해 돌아 왔지만 기본적으로 철령과 공험진을 경계로 하는 고려의 국경선은 조선 말기까지 이어진다. 조선이 빼앗긴 간도와 연해주 @사진=교과서 251p. 조선의 태내에서 배태된 여진족(만주족)이 후금을 세우고 중원을 정복하여 청을 세운 것은 근세사의 국경선 획정에 큰 변동을 가져온다. 청은 자신의 발상지인 만주에 대한 봉금령을 내려 출입을 금지하고 조선과 백두산 정계비(1712)를 세워 압록과 토문을 국경으로 정한다. 여기서 압록도 그렇지만 토문(土門)이 후일 해석상 논란이 되어 조선말 이중하가 토문을 송하강의 지류(5도백하)라고 주장함에 따라 조선이 관리를 파견하여 인구를 관리하고 세금을 걷는 등 실질적으로 통치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일제는 1909년 청과 간도협약을 체결하여 남만주 철도부설권 등의 이권을 얻는 대신 간도를 청에 넘겨주게 되고, 이에 앞서 청은 2차 아편전쟁에서 패한 후 러시아와 북경조약(1860년)을 맺어 연해주를 러시아에 넘겨준다. 이 두 조약은 모두 소유권자인 대한제국의 승인을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불법조약이므로 우리 영토가 확실하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이처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가 이번에 발행한 ‘대한민국 역사교과서(전2권)’는 근거 사료를 풍부하게 제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역사실 사실 전달에 주력한다.현행 다른 교과서에서는 통일신라이후 고려, 조선의 강역을 제대로 서술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이 시대의 국경선이 고려 때의 철령~공험진 라인을 중심으로 그 이북까지 펼쳐져 있음을 명확히 제시한다.심지어 조선 후기까지도 청이 만주에 대한 봉금령을 내린 이후에도 조선인들이 한족과 달리 이 지역에 대한 경작 등을 목적으로 한 빈번한 출입을 통해 사실상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족이 만주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청대 말기 봉금령이 무력화된 시기이후 일제의 침략으로 혼란기에 접어든 시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교과서는 또 이 지역에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아나키즘 등 다양한 독립운동이 있었음을 보여줌으로써 실증적인 방법으로 역사의 진실에 접근한다. 한편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는 ‘대한민국 역사교과서 역사교사 양성과정(전 11주)’을 진행하고 있다. 강사는 ‘대한민국 역사교과서’의 집필진 및 감수진들이 맡았다.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측은 “수강자들은 30여년 경력의 역사교사부터 전·현직 구청장과 청와대 비서관을 역임한 고위공직자 출신 및 대학교수들과 기업인들,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일반 시민들로 다양하다”며 “바른 역사에 대한 희구가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의미을 부여했다.

문화 | 양성희 기자 | 2024-06-08 22:22

장수 개안사지 아귀구 전경 장수군은 역사문화권 발굴조사 지원사업으로 이뤄진 장수 개안사지 2차 발굴조사에서 상당 규모의 사찰 건물터의 전모가 드러났다고 3일 밝혔다.역사문화권 발굴조사 지원사업은 장수군(군수 최훈식)과 전북특별자치도(도지사 김관영)가 공동으로 추진하고 조선문화유산연구원(원장 이택구)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장수군 장계면 삼봉리 탑동마을에 위치한 장수 개안사지는 지난 1차 발굴조사에서도 막새기와와 귀면와 등 중요유물이 출토됐으며, 여러 유물들을 통해 후백제와의 연관성이 확인되고 있다.이번 조사에서는 후백제(통일신라) ~ 조선시대에 이르는 건물지 8동, 담장 2기, 석축 6기, 축대, 보도시설, 배수로, 우물, 아귀구(餓鬼口) 등이 추가로 발굴됐다. 장수 개안사지 아귀구 전경 장수 개안사지 아귀구 전경  *아귀구 : 불교용어로 사찰에 아귀(귀신)를 다스리기 위해 음식(정제된 물)을 주는 구멍 무엇보다 사찰건물의 경우 일반건물과 달리 탑, 금당, 강당 등으로 구성돼 있고, 스님들의 생활공간이 별도로 마련돼 있어야 하는데,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이와 관련된 시설과 공간이 일부 확인됐다.이에 더해 보도시설은 남북방향으로 경사면을 따라 길게 조성돼 있으며, 보도시설을 중심으로 동쪽에 다수의 건물이 나타났으며, 그 밖에도 온돌 시설과 우물 1기, 승방지(스님들이 머무는 곳)의 공간구성 및 실체도 드러났다.이번 조사에서는 현재 확인된 건물보다 선행된 건물의 흔적이 확인되며 명확하지는 않지만 선행건물지에서 확인된 유물을 통해 후백제와 통일신라시대와 연관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또한 치미(용마루의 양끝 머리에 두는 기와) 적새, 막새기와를 비롯한 방대한 양의 유물이 출토된 점, 아직 사찰의 중심사역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건물의 장식 기와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 장수 개안사지 사찰은 왕실사찰과 버금가는 위계를 가졌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군은 향후 관련 전문가인 중앙승가대학교 최태선 교수와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위원회 정상기 위원의 자문을 청취해 일반인에게도 장수 개안사지를 공개할 예정이다.최훈식 군수는 “개안사지 발굴성과를 통해 중요한 불교문화유산이 자리한 것에 대해 장수의 역사성이 하나씩 밝혀짐에 뿌듯함을 느끼며 지역의 역사규명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문화 | 백종기 선임기자 | 2024-06-05 09:40

장성군이 27일 장성 황룡승전기념공원에서 제130주년 장성동학농민혁명 승전기념식을 갖는다. 동학군 유족과 신순철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김한종 장성군수, 이개호 국회의원, 고재진 장성군의회 의장, 도‧군의원 등 3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장성군이 주최하고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이번 기념행사는 장성 황룡 동학농민혁명 전투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숭고한 정신을 계승‧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마련됐다.27일 오전 10시 식전공연으로 시작해 동학농민혁명 경과보고, 폐정개혁 12개조 낭독, 기념사, 축사, ‘조선의 눈동자’ 시 낭송 순으로 진행된다. 사진은 2023년 장성동학농민혁명 승전기념식 1998년 국가사적 406호로 지정된 황룡전적(황룡면 신호리 356번지 외)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군과 관군이 맞붙은 ‘장성 황룡촌 전투’의 격전지다. 소총과 야포 등 신식무기로 무장한 관군에 맞서 대나무로 만든 장태와 죽창을 앞세운 동학군이 대승을 거둬, 훗날 전주성 점령의 발판을 마련했다.현재 이곳에는 황룡촌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죽창을 형상화한 승전기념탑이 특히 이목을 끈다. 장성군은 매년 황룡전적에서 열리는 승전기념식 사업비를 지원하는 등 동학정신 계승에 동참하고 있다.김한종 장성군수는 “제130주년 장성동학농민혁명 승전기념식이 동학 선열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인간 존중과 평등 실현의 가치를 되새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문화 | 홍성표 기자 | 2024-05-27 10:17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이 지난 22일 오전 심원면 세계프리미엄 갯벌생태지구에서 ‘2024년 세계습지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했다고 밝혔다.해양수산부가 주관한 이날 행사는 심덕섭 고창군수와 임정호 고창군의회 군의장 및 군의원,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 윤준병 국회의원, 김종훈 전북특별자치도 경제부지사, 김기웅 서천군수, 송호석 전북지방환경청장, 한기준 해양환경공단 이사장과 지역주민을 비롯한 400여명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기념식에는 습지보전에 기여한 유공자 표창과 고창 ‘동리창극단’의 축하공연, 염생식물 식재 퍼포먼스가 진행돼 습지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보전의식을 전파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현장에는 관내학생과 어린이집 원생 200여명이 찾았다. 세계자연유산 고창갯벌 홍보캠페인·업사이클링 체험·환경교육 등 20여개의 생태관광 체험부스가 준비된 ‘함께습지 페스타’가 운영되어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하였다.고창군은 연안습지인 ‘고창갯벌’, 내륙습지인 ‘운곡습지’와 ‘인천강하구’ 총 3곳의 습지보호지역을 보유하고 있다. 고창갯벌은 멸종위기종 포함 164종의 조류가 관찰되는 철새 이동경로의 핵심기착지이자, 생태계의 보고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21년 연속유산인 ‘한국의 갯벌’로서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심덕섭 고창군수는 “세계 습지의 날이라는 뜻깊은 기념행사의 개최를 위해 노력해주신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님과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지역사회와 갯벌의 공존을 도모하며, 미래세대에게 이 소중한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줄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하여 다양한 정책을 펼쳐 나가겠다”고 밝혔다.

문화 | 이세호 기자 | 2024-05-23 11:53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고구려 토기에 새겨진 ‘해시태그(#)’ 문양의 정체를 두고 여전히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지난 10~11일 열린 한국목간학회 주최 3회 한·중·일 목간연구 국제학술대회에서 고구려사 전공인 여호규 한국외대 교수는 이 문양이 행운과 대박, 복의 상징이었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고구려 유물들을 둘러싼 주요 수수께끼로 꼽히는 #기호가 1500여년 전의 고구려에서는 네잎 클로버나 숫자 7과 같은 의미였다는 말이다.여 교수는 ‘고구려유적의 ‘#’자 출토현황과 그 의미’란 논고를 통해 ‘#’문양은 고구려인이 창안한 행운과 대박, 복을 비는 ‘대길’(大吉)’의 뜻이라며, 이 기호가 백제와 신라는 물론 왜국까지 전파돼 활용됐다는 학설을 내놓았다.‘#’기호(혹은 글자, 문양)는 지난 100여년간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 흩어진 3~7세기 고구려 유적의 토기와 기와에서 180건 이상 발견됐다.하지만, 여태껏 실체적 의미가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학계에서는 문자설, 부호설 등이 나왔고 작고한 인기작가 최인호도 1990년대 펴낸 역사소설 ‘왕도의 비밀’에서 광개토대왕의 상징 문장이란 주장까지 내놓았지만 정설은 없다.이번에 나온 여 교수의 주장은 #기호의 계통을 총체적으로 살펴본 연구성과라는 데 의미가 있다. 여 교수는 1946년 경주 호우총에서 발굴된 광개토왕 추모의식이 적힌 고구려제 문자 그릇을 비롯해 만주와 남북한에서 모두 182건에 이르는 토기, 석각, 와당, 기와의 #표시를 모두 분류하고 분석했다.그 결과 고구려인들이 ‘대길’(大吉)의 ‘길’(吉)자를 변형해 ‘#’을 행운을 상징하는 기호 혹은 글자로 창안했다는 것을 새로 규명했다고 논고에서 밝혔다.논고를 보면, 고구려 유적 출토 ‘#’자는 국내성 지역 132건(최대 229건), 남한지역 50건(최대 56건) 등 182건에 이른다. 국내성 지역 ‘#’자는 석각, 와당, 기와 등 다기한 유물에 새겨졌으나 남한은 토기만 확인된다. 형태도 국내성 사례는 대부분 마름모꼴인데 비해 남한 지역의 유물들 문양은 직사각형이 더 많다.‘#’자 의미에 대한 견해는 문자설과 부호설로 나누어져 있다. 백제 풍납토성의 경당지구 유적에서 ‘대부’(大夫)’와 ‘#’자가 각각 새겨진 목 짧은 토기가 출토되고, 서울 아차산 고구려 시루봉보루에서 ‘대부#’(大夫#) 명문이 출토된 이후 문자설이 좀 더 주목을 받아왔다.‘#’자를 새긴 순서를 살펴보면 우물이란 뜻을 지닌 한자 ‘井(정)’자의 필획과 상당히 다르다. 가로획이나 세로획을 엇갈리게 새긴 경우도 많다. 5세기 고구려군이 최전방 진지로 주둔했던 시루봉보루 출토 큰 독(대옹)의 ‘대부#’(大夫#) 명문에서 ‘#’자는 ‘대부’(大夫)와 반대 방향에서 거꾸로 새겼다. ‘#’자를 ‘우물 정(井)’자로 인지하고 새겼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곧 ‘부’(夫)자와 ‘#’자가 본래 한 글자였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본다.이에 여 교수는 중국 지린성 지안(집안)에 있는 고구려 도읍 국내성터 근교의 4세기 중엽~후반의 왕릉급 무덤인 천추총의 계단석과 구름무늬(권운문) 와당 출토품을 주목한다. 이 무덤의 내부 계단석과 와당의 중심 부분에서 ‘#’자 기호가 최초로 확인되며, 이 두 유물보다도 시기가 앞서는 국내성터 출토 권운문와당의 중심 부분에는 ‘대길’(大吉)이 새겨져 있다는 점 때문이다. 역시 시기가 앞서는 4세기 초 미천왕 무덤으로 추정되는 지안 서대묘 계단석에도 ‘大吉’이 새겨져 있다는 점에서 여 교수는 ‘#’기호는 고구려인들이 애초엔 국내성 부근의 왕릉 유적 유물에 새겨진 ‘대길’(大吉)의 ‘길’(吉)자를 변형, 축약하는 여러 단계를 거쳐 창안한 상징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힌다.논고를 보면, 고구려인들이 ‘#’자를 처음 창안한 4세기 중반에는 주로 왕릉급 무덤의 조영이나 제사와 관련해 기호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자는 일반적인 길상구 ‘대길’(大吉)을 뜻하므로 점차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널리 수용되었고, 백제나 신라, 일본 등 주변국 토기 문양 등으로도 널리 전파되었다는 것이다.여 교수는 “고구려의 식자층이라면 대부분 ‘#’자가 ‘대길’(大吉)을 뜻하며, ‘길’(吉)자를 변형한 ‘(夫+井)’자에서 유래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자의 의미나 그 유래도 주변국으로 퍼져나갔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특히 고구려 최전방이던 서울 아차산 시루봉 보루 유적에서 병사들의 개인용품으로 보이는 ‘#’자 새김 토기류가 수십여개 무더기로 나온 건 병사들의 안전과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행운의 부적 기호로 ‘#’자가 널리 활용된 단적인 증거라고 짚었다.415년 광개토왕을 기리는 청동 호우(壺杅)가 경주 고분에 묻힌 사실이나 백제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목짧은 항아리 두종 표면에 각각 ‘大夫’와 ‘#’ 명문이 새겨진 것도 신라, 백제에서 ‘#’자의 의미나 유래를 인지했음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한다. 길상구 ‘대길’(大吉)을 한글자인 ‘大+#’자로 변형하면서 더욱 축약해 창안한 ‘#’자가 ‘상서로움’을 표상하는 동북아 공용의 상징 부호로 쓰였다는 추론이다.발표를 들은 김재홍 국민대 교수는 “고구려 문자문화의 수수께끼에 대해 학문적 방법론을 가지고 관련 유물들을 오랫동안 모으고 연구해 의문을 풀어보려한 점을 높이 평가할만하다”면서 “대길(大吉)에서 어떻게 정(井)자 모양으로 변했는지에 대해 중간단계의 기호 근거들을 제시하지 않고 주관적으로 해석이 비약한다는 점이 한계로 비친다”고 했다.

문화 | 양성희 기자 | 2024-05-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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