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감학원, 아동들 수천명 납치감금 후 폭행 사망 추정
선감학원, 아동들 수천명 납치감금 후 폭행 사망 추정
  • 이광효 기자 leekwhyo@naver.com
  • 승인 2019.09.2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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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저녁에 곡괭이 자루 매타작..죽은 아이 얼굴에 소라ㆍ낙지 붙어 있어”
권미혁 의원 19일 ‘선감학원 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 대표발의
19일 국회에서 있은 ‘선감학원: 강제수용 등 인권침해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대책 마련 토론회’에서 선감학원 피해자들이 선감학원의 참혹한 실상을 폭로하고 있다./사진=이광효 기자
19일 국회에서 있은 ‘선감학원: 강제수용 등 인권침해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대책 마련 토론회’에서 선감학원 피해자들이 선감학원의 참혹한 실상을 폭로하고 있다./사진=이광효 기자

1982년까지 경찰 등 국가 공무원들이 수천 명의 아동들을 납치ㆍ감금해 구타와 강제노동, 성폭행 등 참혹한 인권 유린을 자행한 선감학원의 실상이 국회에서 폭로됐다.

‘선감학원: 강제수용 등 인권침해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대책 마련 토론회’가 19일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 주최로 국회에서 개최됐다.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였던 지난 1942년 현재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당시 경기도 부천군 대부면 선감리 섬)에 세운 부랑아 수용소다.

선감학원 시설은 부랑아 수용을 목표로 했다. 해방 이후 미군정기인 1946년 2월 경기도에 이관됐고 1982년까지 경기도 공무원에 의해 운영됐다. 일제강점기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법적 근거도 없이 운영됐다.

5ㆍ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부는 ‘부랑아 소탕’이라는 구호 아래 수천 명의 아동들을 강제로 납치ㆍ감금하며 아동 인권을 유린했다.

김영배 ‘선감학원 아동국가폭력피해대책위원회’ 회장은 “박정희 정부는 부랑아 소탕이라는 구호 아래 무조건적인 단속을 하며 아동 인권을 짓밟았고 수집수용 아동들은 보호받을 수 없었으며 단속의 숫자는 업적으로 평가됐다”며 “단속한 부랑아 수 및 그 수적인 감소를 근거로 ‘이전부터 계속된 사회문제를 해결했다’고 선전하면서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렇게 왜곡된 성과주의와 거짓 조작의 행정으로 국가는 사회적 약자인 아동들을 억압하며 정책을 미화했다”고 비판했다.

선감학원에서 퇴원한 아동들을 공식적으로 4961명이다. 그러나 실제 선감학원에 수용됐던 아동들은 7000~8000명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김영배 회장은 “행방불명된 아동이 833명이다. 사망한 아동은 300명 정도일 것으로 추산된다”며 “사망 원인은 탈출하다가 죽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폭행이나 영양실조로 죽은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선감학원은 섬에 있었다. 아동들은 탈출에 필요한 배를 구할 수 없어 바다를 헤엄쳐 육지로 탈출하는 것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아동들이 탈출하다가 사망했다.

김영배 회장은 “수용인원 중 대부분(40~50%)은 초등학생에 해당하는 12세 이하였다. 강제노역이 실시되는 상황에서 일일 배급되는 식사량이 너무 적어서 배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나무껍질, 열매, 곤충, 뱀이나 쥐를 잡아 굶주린 배를 채우며 살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뱀에 물리거나 부상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며 “겨울에 발이 너무 시려서 자기 발에 오줌을 싸는 동료 아이들을 목격하고, 맨발의 발에 동상이 들어 살이 썩고 자기 손가락이 썩는 냄새를 맡았던 일, 걸음을 못 걸을 정도의 고통을 10대에 경험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원생에게는 일일 노동 할당량이 주어졌으며 이를 채우지 못하면 쉴 시간을 주지 않았다”며 “성인이 돼 선감학원을 나가려 할 때도 집으로 돌아가는 교통비 지급도 없었다. 오히려 이들은 인근 농가의 노비(무보수 머슴) 또는 상점의 무보수 심부름꾼으로 전락했다”고 밝혔다. 김영배 회장은 1955년 2월생이다. 1963~1968년 선감학원에 수용됐다.

이대준 ‘선감학원, 국가폭력, 아동학대 피해자 협의회’ 부회장은 “(선감학원은) 국가공무원들과 경찰관들이 합동해 캄캄하고 무서운 선감도 섬에 어린 아동들을 납치ㆍ감금해 강제노역과 성폭행, 구타를 가하고 아동인권을 유린한 무법 천지였다”며 “우리 피해 생존자들은 죄수나 노예 취급을 당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많은 아이들이 자유를 찾아 바다 속으로 뛰어 들었고 높은 파도에 떠내려갔다. 며칠 후 발견된 죽은 아이 몸은 퉁퉁 부어 있었고 얼굴에 소라나 낙지 등이 붙어 있었다”고 말했다.

이대준 부회장은 “죽은 아이는 관할에 신고도 하지 않고 선생 한 분 입회 하에 죽은 동료를 짚으로 만든 가마니로 저희들이 직접 공동묘지나 산꼭대기 위에 묻어주기도 했다”며 “탈출에 실패해 돌아오면 밧줄로 온몸을 꽁꽁 묶어 놓고 저녁에 공포의 곡괭이 자루 매타작이 시작됐다”고 폭로했다.

이 부회장은 “어린 소년들은 염전일, 농사일, 축산일, 양잠일을 해야만 했다. 축산부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소 여물을 썰다가 가끔 손가락이 작두에 잘려 나가는 일도 있었다”며 “우리들이 먹는 끼니는 너무 부실해 밥과 반찬은 구더기가 꿈틀대는 새우젓이나 썩은 짠지, 소금, 쥐가 들어가 있는 시래기국 등이었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심지어 젊은 선생들은 곱상하게 생긴 아이를 본인들 관사로 불러다 집안청소나 빨래를 시키고 성 노리개로 성폭행까지 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대준 부회장은 1958년생이다. 1966년에 선감학원에 수용돼 1974년에 탈출했다.

다른 선감학원 피해자는 기자에게 “맞아 죽은 아이를 내가 묻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권미혁 의원은 이날 ‘선감학원 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률안의 주요 내용은 ▲선감학원 피해사건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 또는 그 유족에 대한 보상금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결정하기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선감학원피해사건진상규명위원회’ 설치 ▲피해자와 그 유족에게 보상금, 의료지원금, 생활지원금 지급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피해자 위한 주거복지시설 및 의료복지시설을 설치할 수 있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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