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파운드리에 이어 인공지능(AI)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에서 밀리자 '정신 개혁'으로 돌파구 찾기에 나서 주목된다.
삼성전자는 최근 반도체 사업 50년을 맞아 '반도체인의 신조'를 새롭게 만들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사업 50주년을 맞아 시대의 변화에 맞는 혁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올해는 삼성전자가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지 50년이 되는 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내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은 이번 주 'DS인의 일하는 방식'을 제정하기 위해 임직원을 대상으로 의견을 청취중이다.
삼성전자의 '일하는 방식'은 '반도체인의 신조'로 통한다. 반도체인의 신조는 1983년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삼성전자가 임직원의 의지를 다지고자 만든 10가지 행동 다짐을 말한다. 이는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라 △큰 목표를 가져라 △일에 착수하며 물고 늘어져라 △지나칠 정도로 정성을 다하라 등의 내용으로 채워졌다.
당시 고 이병철 창업회장은 일본 도쿄에서 반도체 산업에 본격 진출한다고 발표한 '2·8 도쿄 선언'을 바탕으로 반도체 사업에 속도를 냈다. 당시 외부의 부정적인 전망에도 불구, 삼성전자는 이후 이러한 신조를 정신적 지주로 삼아 1992년 세계 최초로 64Mb(메가비트) D램을 개발한 데 이어 1993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 세계 1위에 이름을 올렸다.
권오현 삼성전자 고문은 저서 '초격차'에서 "나를 포함한 모든 삼성 반도체 임직원은 아침마다 반도체인의 신조 10개 항목을 외치고 일을 시작했다"며 "그중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라'와 '큰 목표를 가져라'는 지금도 내 삶의 신조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고 밝혔다. 김기남 삼성전자 고문도 역시 2019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 인터뷰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1986년 1Mb D램 개발을 꼽으며 "삼성전자 반도체인의 신조 1번 항목인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라'를 가슴에 품은 시점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반도체인의 신조는 지금도 삼성 반도체 사업장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번에 삼성전자가 신조를 새롭게 만드는 이유는 전사적 조직 문화와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재정비하려는 것으로 읽힌다. 삼성전자는 사내 게시판에 올린 공문을 통해 반도체 시장 진출 50주년을 지나 새로운 50년을 맞이하는 변곡점을 앞두고, '반도체인의 신조'를 계승하되 현재의 가치도 반영, 새롭게 일하는 방식을 만들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최근 반도체 기술과 시장 트렌드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에서 인공지능(AI) 선두주자 엔비디아에 납품이 막히면서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빼앗긴 상태다. 또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서도 10여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1위인 대만의 TSMC와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 최근 회사내 노조가 생기면서 노사 갈등이 이어지는 점도 반도체 사업에 부담을 주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에 '반도체인의 신조’를 새로 만들기로 한 것은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전자 반도체의 위상을 제고하고, 위기를 타계하기 위한 의지를 다지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을 새 반도체 수장으로 영입해 인공지능(AI) 분야 등에서 초격차 경쟁력 회복에 적극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