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돈을 댄 전주(錢主)가 2심 재판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야권은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주가조작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의 수용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권순형ㆍ안승훈ㆍ심승우 부장판사)는 12일 투자자 손 모 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손씨는 애초 주가조작에 공모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된 방조 혐의가 인정돼 유죄를 선고받았다.
현행 형법 제32조제1항은 “타인의 범죄를 방조한 자는 종범으로 처벌한다”고, 제2항은 “종범의 형은 정범의 형보다 감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손씨에 대해 “다른 피고인들이 인위적으로 시세를 부양하기 위해 매매 성황 오인·매매 유인 목적으로 시세조종 행위를 하고 있음을 알았던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손씨는 단순히 피고인들에게 돈을 빌려준 전주가 아니라 피고인들이 시세조종 행위를 하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에 편승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대량으로 매수해 인위적 매수세를 형성한 뒤 주가 부양에 도움을 주는 등 정범의 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행위를 했다”며 “손씨가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다른 종목 투자와 같은 방식으로 투자했다고 보기 어렵다. 전형적인 투자 성향을 보여주는 다른 거래와 달리 도이치의 경우 시세조종에 협조하는 양상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가조작 주포(그 주식의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자금력을 가진 세력) 등이 시세조종을 한다는 행위를 알면서도 이를 방조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며 “2010년 10월께 이전 방조 행위에 대해선 공소시효가 완성됐으므로 면소 판결이 선고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으로 주식 시세가 증권시장의 정상적인 수요와 공급에 따라 형성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일반 투자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결과를 보였다”며 “그럼에도 피고인은 범행을 부인하고 반성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326조는 “다음 경우에는 판결로써 면소의 선고를 하여야 한다”며 “1. 확정판결이 있은 때, 2. 사면이 있은 때, 3. 공소의 시효가 완성되었을 때, 4. 범죄 후의 법령개폐로 형이 폐지되었을 때”라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과 벌금 5억원을 선고했다. 1심에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5억원이 선고됐었다.
◆공소시효와 김건희 여사 관여 여부가 최대 쟁점
재판부는 “권 전 회장은 상장회사 최대주주 겸 대표이사 지위에 있었지만 책임을 도외시한 채 자기 회사의 시세조종 행위를 도모했다”며 “범행으로 유무형의 이익을 얻었고 신주인수권부사채 등으로 도이치모터스의 초기 안정적 성장에서 상당한 이익을 취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차명계좌를 이용해 권 전 회장 등과 시세조종 행위를 주도적으로 실행한 혐의를 받은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과 벌금 4억원을 선고했다.
2심 판결에선 이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기소한 피고인 9명 가운데 8명이 징역형·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선수로 지목된 이정필 씨만 1심과 같이 징역 2년의 실형과 벌금 5000만원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기간을 5단계로 나눴지만 모두 권 전 회장이 주도한 범죄이므로 '포괄일죄'(여러 개의 행위가 포괄적으로 한 개의 구성 요건에 해당해 한 개의 죄를 구성하는 경우)로 봐야 함을 주장했다.
포괄일죄가 적용되면 여러 범죄 중 마지막 범죄가 끝난 시점이 공소시효 기산 시점이 된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1단계(2009년 12월∼2010년 9월) 전부와 2단계 초기(2010년 9월∼10월 20일)를 1차 작전 시기로, 나머지 기간을 2차 작전 시기로 판단했다.
두 시기 시세조작 행위를 주도한 '주포'와 범행 방식이 다르다는 것.
이 때문에 1차 작전 시기는 공소시효(10년)가 지나 '면소' 판결하고 포괄일죄가 적용돼 공소시효가 남은 나머지 2차 작전 시기에 대해서만 유·무죄를 판단했다.
김건희 여사는 이 사건에 대해 시세조종에 돈을 대는 '전주' 역할을 했거나 주가조작이 의심되는 시기에 거래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1심 재판부는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거래한 김 여사의 계좌를 총 5개로 봤다. 이 가운데 1개는 1차 작전 시기에 쓰인 계좌로 공소시효가 완료됐다.
1심 재판부는 공소시효가 남은 2차 작전 시기에 사용된 나머지 4개 계좌 중 3개 계좌가 시세조작에 활용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김 여사의 공동모의 여부는 명시하지 않았다.
◆야권, 김건희 특검법 수용 촉구
2심 재판부도 활용된 김 여사 계좌에 대해선 1심 재판부와 같은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김웅 전 의원은 12일 CBS(Christian Broadcasting System, 기독교방송)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이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공소시효를 어떻게 볼 것인지, 김건희 여사가 관여했는지가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앞서 대통령실은 지난해 2월 14일 보도자료를 발표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1심 판결문 중 범죄일람표에 김건희 여사가 등장하는 48회 모두 ‘권오수 매수 유도군’으로 분류돼 있고 차명계좌가 전혀 아니다”라며 “‘권오수 매수 유도군’이란 표현 그대로 권오수 대표와 피고인들이 주변에 매수를 권유해 거래했다는 뜻에 불과하다. '매수를 유도'당하거나 '계좌가 활용'당했다고 해서 주가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김건희 여사 매매 내역을 보면 2010년 10월 28일부터 12월 13일까지 기간에 단 5일간 매도하고, 3일간 매수한 것이 전부다”라며 “아무리 부풀려도 '3일 매수'를 주가조작 관여로 볼 수 없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2010년 11월 3일, 4일, 9일에 매수한 것 외에 김건희 여사가 범죄일람표에 등장하지 않는 것은 피고인들과는 매매 유형이 전혀 달랐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히려 무고함을 밝혀주는 중요 자료다”라며 “그동안 일관되게 ‘주가조작꾼 A씨에게 속아 일임 매매했다가 계좌를 회수했고 그 후 수년간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간헐적으로 매매한 것은 사실이나 주가조작에 관여한 적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1심 판결문 내용과 해명이 충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1심 판결문에서 주목할 것은 김건희 여사보다 훨씬 더 큰 규모와 높은 빈도로 거래하고 고가매수 등 시세조종성 주문을 직접 낸 내역이 있어 기소된 '큰 손 투자자' B씨의 경우에도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는 것이다”라며 “같은 논리라면 '3일 매수'로 주가조작 관여 사실이 인정될 리 없다”고 강조했다.
손씨는 주식 매수액이 약 75억원, 김건희 여사는 약 40억원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검찰독재대책위원회는 1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해 “대통령실 논리대로라면 손모씨가 유죄니까 김 여사도 유죄인 것이다”라며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주가 조작을 옹호하고 주식 시장을 교란하며 개미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궁극적으로 주식 시장을 파괴할 것이 아니라면 김건희 특검법을 즉각 수용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13일 국회에서 개최된 최고위원회의에서 “김건희 특검은 피할 수 없는 필연이다”라며 “대한민국에 김건희 특검법을 반대하는 세력은 주가조작 세력, 불공정거래 세력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