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처음으로 올해 79회 광복절 기념식은 둘로 쪼개어 치러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한 대 반해 야당은 일제 식민지배를 옹호하는 ‘뉴라이트’ 논란에 휩싸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사퇴 요구가 수용되지 않자 불참했다.
독립유공자 후손 단체인 광복회 등 일부 독립운동단체와 야당은 대신 같은 시간 용산구 효창공원 내 소재 백범기념관에서 자체 광복절 기념식을 열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는 부끄러운 광복절”이라고 개탄했다.
일단은 뉴라이트를 옹호하는 윤석열 정부의 '친일 역사 쿠데타'가 승기를 잡은 모양새다. 그간 뉴라이트가 광복절 행사를 반쪽내서 점유한 적이 없었지만 올해는 반쪽을 점유하고 건국절 논란을 가속화시키고 있으니 획기적인 진전이 이뤄진 셈이다.
다만 79년만에 두동강난 광복절 기념식이 향후 국내외 정치판에 어떤 영향을 몰고 올 지 예측할 수 없는 파장이 우려된다.
윤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는 이날 오전 ‘되찾은 나라, 위대한 국민, 더 큰 대한민국’을 주제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는 독립유공자 유족, 시민, 학생 등 국민 2000여 명과 함께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의 후손이자 2024 파리 올림픽 유도 은메달리스트 허미미 선수, 양궁 3관왕 김우진, 임시현 선수 등이 참여했다.
광복회 등 독립운동단체들은 이날 효창공원 내 백범기념관에서 약 3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별도 기념식을 개최하고,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등 윤 정부의 '뉴라이트' 역사 쿠데타에 강력히 항의하였다.
이는 37개 독립운동단체연합과 25개 독립운동가 선양 단체로 구성된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항단연)이 주관했으며,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와 박홍근 김용만 김병주 곽상언 이언주 황운하 황명선 이수진 천준호 김윤 서영교 의원,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와 김선민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 등 야권 인사 약 100여명도 참석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기념사에서 "최근 진실에 대한 왜곡과 친일사관에 물든 저열한 역사인식이 판치며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면서 "광복회는 결코 이 역사적 퇴행과 훼손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며 자체 기념식을 개최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분열의 시작이 아니라 전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광복의 의미를 기리는 진정한 통합의 이정표를 세우기 위함"이고 강조하고, "최근 왜곡된 역사관이 버젓이 활개 치며, 역사를 허투루 재단하는 인사들이 역사를 다루고 교육하는 자리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며 "한 나라의 역사의식과 정체성이 흔들리면 국가의 기조가 흔들린다"고 지적했다.
광복회 등 독립운동단체들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제정하자고 주장하는 뉴라이트 성향 인물로 지목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윤석열 정권은 역사의 전진을 역행하고 있다”며 “우리 국민의 민생에는 ‘거부권’을 남발하면서 일본의 역사 세탁에는 앞장서 ‘퍼주기’만 한다. 과거를 바로 세워 미래로 나아가자는 상식적 외침을 무시한 채 역사를 퇴행시킨다면 결코 국민과 역사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사회민주당과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자주통일평화연대 등은 전날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윤석열 정권 굴욕외교 규탄 시민사회 1000인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이 철회되지 않으면 정부가 주관하는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 행사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었다.
박찬대 민주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독립운동에 일평생을 바친 우국지사와 순국선열에 대한 심각한 모욕을 행하고 있는 참담한 현실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며 "우리 헌법은 3·1운동을 통해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있다. 헌법을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직격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김형석 관장 임명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관장에 전두환(전 대통령)을 임명하는 꼴"이라며 "이러다가 8·15를 '패전일'로 독립기념관은 '패전기념관'으로 독립군은 '무장 테러 단체'로 고칠까 무섭다"고 말했다.
한편 KBS는 제79주년 광복절인 15일 새벽 첫 방송에 기습적으로 일본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 ‘나비부인’을 방송해 주목을 받았다.
KBS1은 이날 오전 0시부터 ‘KBS중계석’을 통해 지난 6월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했던 내용을 녹화해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나비부인’을 방송했다. 기모노를 입고 등장하는 나비부인은 동명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자고코 푸치니의 오페라 공연으로, 2차대전 당시 히로시마와 함께 원자폭탄이 투하된 항구도시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한다.
광복절에 하필 이 같은 음악과 등장인물이 나온 오페라를 방영한 데에 시청자들은 KBS 시청자상담실 홈페이지에 “광복절이 되자마자 기모노를 공영방송에서 봐야 하느냐”, “무슨 의도로 굳이 광복절 0시에 이 같은 방송을 내보내느냐” 등 대거 반발하고 나선 상태다.
아직까지 KBS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