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총수이자 창업자인 김범수(58) 경영쇄신위원장이 결국 구속됐다.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불거진 시세 조종 혐의다. 카카오 창사 이래 첫 총수 구속으로, 회사는 사법 리스크가 극에 달하면서 최근 추진해 온 신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서울남부지법 한정석 부장판사는 23일 오전 자본시장법 위반(시세조종) 혐의를 받는 김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한 부장판사는 증거를 인멸할 염려,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최장 20일간의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SM엔터테인먼트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이브의 SM엔터 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사모펀드 원아시아파트너스 등과 공모해 SM엔터 주가를 공개 매수가인 12만원보다 높게 설정·고정한 혐의다.
검찰은 카카오가 지난해 2월 16∼17일과 27∼28일 사이 약 2400억원을 동원해 SM엔터 주식을 장내 매집하며 총 553회에 걸쳐 고가에 매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날 오후 1시43분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한 김 위원장은 "SM엔터 시세 조종 혐의를 인정하는가", "주식 흐름 어떻게 보고 받았는가", "투자심의위원회 카톡방에서 보고 받은 것을 인정하는가", "어떻게 소명할 것인가" 등 취재진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법정에 들어섰다.
하지만 법원은 김 위원장이 시세 조종을 직접 지시·승인했다는 증거를 검찰이 확보했다고 판단하고 구속에 동의한 것으로 판단된다.
앞서 금융감독원 특별사법경찰은 하이브와 카카오가 SM엔터 인수를 둘러싸고 서로 공개매수 등으로 분쟁을 벌이자 작년 10월과 11월 김 위원장 등 카카오 경영진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이후 검찰은 경기 성남시에 있는 카카오 판교아지트 소재 카카오그룹 일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고, 8개월 만인 지난 9일 김 위원장을 비공개로 소환한 뒤 17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카카오 법인과 구속기소된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 지모씨 등은 보석으로 석방돼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카카오는 지난해 11월 주가 조종, 분식 회계 등 각종 혐의를 비롯한 수많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경영쇄신위원회를 출범했다. 2022년 초 경영 일선에 물러났던 김범수 창업자가 직접 위원장을 맡았다.
이와 함께 지난 3월 새 대표이사에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전 대표를 선임했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게임즈 등 계열사 대표도 교체했다. 지난해 12월에는 계열사 준법·윤리경영 지원 독립 기구인 준법과신뢰위원회(준신위)가 발족했다. 카카오는 최근 준신위에 무분별한 기업공개(IPO) 지양, 불법행위를 한 경영진에 배상책임을 검토하는 안 등 책임 경영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김 위원장 구속으로 카카오는 경영 쇄신, AI 신사업 추진 등에 변수를 맞게 됐다. 김 위원장이 직접 경영 쇄신을 진두지휘했으며 인수·합병(M&A) 등 굵직한 의사결정도 사실상 그의 손에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지난달 초 인공지능(AI) 전담조직 '카나나'를 신설하며 서비스와 모델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지난 5월 정 대표가 "카카오만의 차별점이 담긴 AI 서비스를 올해 발표하겠다"며 AI 사업 변화를 예고한 상황이다.
카카오페이가 지난해 12월 미국 종합증권사 시버트 경영권 인수를 추진하지 않기로 한 것도 그 이유가 사법 리스크와 연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엔터가 SM엔터와 지난해 북미 통합법인을 출범하면서 해외 진출을 시도했으나 SM엔터 인수와 관련한 사법 리스크로 북미 법인 사업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카카오뱅크의 앞날도 주목 요소 중 하나다. 이번 수사를 의뢰한 금융감독원은 기소 의견으로 카카오 경영진과 함께 카카오 법인까지 포함해 검찰에 송치했다. 카카오 법인이 벌금 이상 형을 받으면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의 대주주 자격을 잃을 수도 있다. 현재 카카오는 카카오뱅크 지분 27.17%를 보유하고 있다.
카카오는 김 위원장 구속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대신 카카오는 앞서 검찰의 김 위원장 구속영장 청구 때 경영 쇄신, 인공지능(AI) 사업 혁신에 문제가 없을 거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김 위원장은 지난 17일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결정되자 다음 날인 18일 오전 임시 그룹협의회를 열고 정신아 대표, CA협의체 소속 주요 계열사 CEO 등에게 그룹 핵심 과제를 흔들림 없이 수행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진행 중인 사안이라 상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현재 받는 혐의는 사실이 아니다. 어떤 불법 행위도 지시하거나 용인한 적 없는 만큼 결국 사실이 밝혀지리라 믿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