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KT 주주총회는 KT 이사회와 '윤석열 정부'와의 한판 대결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앞서 KT 이사회가 지천타천으로 윤 정부의 신임(?)을 받는 인사들을 모두 탈락시키고 윤경림 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을 차기 KT그룹 대표이사 후보로 단독 선임했기 때문이다.
오는 31일 예정된 KT주주총회에서 이사회는 윤 후보를 대표이사로 반드시 관철시켜야 하고, 윤 정부의 입김 아래 있는 KT 최대주주 국민연금은 이를 저지시켜야 하는 입장이다. 물론 주총일 까지의 물밑 협상 과정에서 KT 이사회와 국민연금 등 대주주간에 모종의 타협점을 찾는 극적 반전이 이뤄질 수도 있다.
8일 증권가와 정보통신업계에 따르면 이른바 ‘윤경림 리스크’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윤경림 사장이 정부 여당의 반대를 뚫고 7일 차기 대표이사(CEO) 최종 후보로 결정됐지만, 그 후폭풍과 '이권 카르텔' 논란 등 경영 리스크 악화 요인이 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에서다.
실제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국민을 약탈하는 이권 카르텔에 맞서 단호하게 개혁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구체적인 기업을 특정하진 않았지만, 최근 정황상 KT 이사회의 후보 추천 과정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은 6명의 KT 이사회 면접관 가운데 지난 정부에서 선임된 친문 성향의 인사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여권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 경제정책수석을 지낸 김대유 사외이사, 문재인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유희열 사외이사를 대표적인 옛 정권 사람으로 보고 있다.
이전에도 대통령실은 KT 차기 대표 선출 과정과 관련해 "공정하고 투명하게 거버넌스가 이뤄져야 한다"며 "그것(공정·투명한 거버넌스)이 안 되면 조직 내에서 모럴 해저드가 일어나고 그 손해는 우리 국민이 볼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시각에서 (KT 대표 선임 문제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전후 맥락상 KT의 이번 차기 CEO 인선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지적한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만약 업계의 추측대로 윤 대통령의 발언이 KT를 지목한 것이라면 윤 후보가 수장 자리에 오르기까진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당장 이달 말로 예정된 정기주총에서 윤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는 KT의 최대주주 국민연금의 향방이 주목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아직 윤 후보에 대해 별 의견을 내고 있지 않지만 지난해 12월 KT 이사회의 구현모 대표의 연임 결정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바 있다. 정부 여당이 '사장 돌려막기'라며 윤 사장을 '구현모 대표의 아바타'로 보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31일 KT의 주주명부 폐쇄일 기준으로 국민연금은 10.1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신한은행(5.58%)과 현대차(4.6%), 현대모비스(3.1%) 등 국내 대주주도 정부 여당에 반기를 들기 어여운 터라 국민연금과 이들 대주주가 연합하면 윤 사장의 대표이사 선임을 저지시킬 수 있다. 비록 KT 전체 지분의 33%를 차지하는 국내 소액주주들과 지분 44%를 차지하는 외국인 주주들이 윤 후보의 대표이사 선임을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이탈표 등을 고려할 때 최종 선임을 낙관하기 어렵다.
만약 이번 주총에서 최종 CEO 후보 안건이 부결된다면 이사회는 다시 원점에서 CEO 선출을 진행해야 한다.
이달말 주총 문턱을 넘더라도 KT의 지배구조, 경영 체계 개선을 요구하는 정부 여당의 압박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검찰은 구 대표가 자신의 쌍둥이 형인 구준모 대표의 회사를 현대자동차그룹이 거액에 인수하도록 도와준 대가로 윤 사장에 대한 보은 인사를 했다는 의혹을 확인 중이다. 윤 사장의 임기 중 정식 수사로 확대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KT 새노조는 이에 대해 "(윤 사장의 최종 후보 선임은) 구현모 체제에 대한 각종 비리 의혹이 언론 보도로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KT 이사회가 구현모 체제의 연장을 선택한 것"이라며 "이는 KT CEO 리스크의 해소가 아니라 증폭을 의미하고 향후 온갖 사법리스크와 논란이 난무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윤 사장이 정기주총에서 차기 CEO로 최종 선임되더라도 정부 여당의 압박이 계속되면 식물 대표가 될 수밖에 없다"며 "특히 CEO 선임 이후라도 정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이 벌어지면, 개인 뿐 아니라 KT 그룹의 경영 정상화는 멀어 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를 의식한 듯 윤 사장 역시 후보 선정 직후 발표한 소감문에서 "최근 정부와 주주의 우려를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며 "소유 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이슈와 과거 관행으로 인한 문제를 과감하게 혁신하고 정부 정책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1963년생인 윤 사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경영과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하나로통신을 거쳐 지난 2006년 KT에 신사업추진실장으로 입사한 뒤, 미래융합추진실장, 글로벌부문장 등 요직을 거쳤다. CJ 부사장과 현대자동차 부사장(오픈이노베이션전략사업부장)을 지낸 경력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