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까지 글로벌 반도체 업황이 크게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이례적으로 자회사 삼성디스플레이에서 20조원을 긴급 차입하기로 해 눈길을 끈다.
반도체 침체기 속에서 영업이익 감소가 우려되지만 미래 수요에 대비한 반도체 투자를 지속하기 위한 재원 확보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 14일 운영 자금 확보를 위해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단기 차입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삼성전자의 이같은 결정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투자 축소·감산 기조 속에도 반도체 투자를 축소하지 않고 계획대로 실행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자회사 차입이라는 '비상수단'을 동원, 미래 수요에 대비하고 기술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해 반도체 투자를 계획대로 실행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향후 반도체 업황 개선이 예상되는 만큼 여유 현금이 생기면 이번 차입금을 조기 상환한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반도체 업황 악화로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은 20조원을 밑돌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1분기 적자를 전망하는 증권사 보고서도 잇따르고 있다.
삼성전자가 매년 50조원 안팎을 벌어서 이 중 대부분을 반도체에 투자해왔던 것을 고려하면 올해 영업이익 감소로 반도체 투자 재원도 일시적으로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삼성전자의 시설 투자 금액은 사상 최대인 53조1천억원으로, 이 중 90%인 47조9천억원이 반도체 투자 금액이다.
반면 지난해 매출액은 302조2300억원으로 사상 처음 300조원을 돌파했지만 연간 영업이익은 43조3800억원으로 전년(51조6339억원)보다 15.99% 감소했다.
특히 지난해 글로벌 경기침체로 메모리 반도체 사업이 부진하면서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10~12월) 영업이익은 4조3061억원으로 전년보다 70% 가까이 추락했다. 매출도 70조4600억원으로 7.97% 감소했다.
삼성전자의 올해 전체 투자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메모리의 경우 작년과 유사한 수준의 투자가 예상된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지난달 31일 콘퍼런스콜에서 "최근 시황 약세가 당장 실적에 우호적이지는 않지만, 미래를 철저히 준비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결론적으로 올해 시설투자(캐펙스·CAPEX)는 전년과 유사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취약부문으로 꼽히는 파운드리(foundry·반도체 위탁생산) 역시 첨단공정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평택과 미국 테일러 공장의 생산 능력 확대를 중심으로 투자를 지속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