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작년 4분기 실적의 '어닝쇼크'를 확정했다.
지난 1월 초 발표한 잠정실적보다 특히 반도체부분의 영업익이 97%나 추락해 심각성을 더했다.
시장은 이런 실적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이날 삼성전자 주가가 3.63% 하락하는 등 과민반응을 나타냈다.
31일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총매출 70조4600억 원, 영업이익 4조3100억 원을 올렸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전체로는 매출 302조2300억 원, 영업이익 43조3800억 원으로 사상 처음 매출 300조 원을 넘겼다. 하지만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약 16% 감소했다.
이 같은 실적악화는 지난해 4분기(10∼12월) 반도체 사업(DS부문)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약 97% 감소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DS부문 내 사업별 영업이익을 공개하진 않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이 역대 분기 최대 매출을 낸 점을 고려하면 메모리 반도체에선 적자에 가까웠을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DS부문은 지난해 4분기 매출 20조700억 원, 영업이익은 2700억 원을 거두며 적자를 간신히 면했다. 2009년 1분기(1∼3월) 이후 가장 낮은 영업이익이다. 2021년 4분기 영업이익(8조8400억 원) 대비 96.9% 줄었다.
이 같은 DS부문 실적 악화는 글로벌 정보기술(IT) 수요가 줄며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급락하고 재고가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실적은 시장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저조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예상했던 것보다 연말 반도체 시장의 상황이 더 빠르게 악화된 탓”이라고 말했다.
실적 악화에도 삼성전자는 웨이퍼(반도체 기판) 투입량을 줄이거나 생산라인을 멈추는 등의 ‘인위적 감산’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SK하이닉스, 키옥시아, 마이크론 등 주요 경쟁사들이 설비투자를 연기하거나 생산량을 줄여 대응하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설비투자 규모도 줄이지 않겠다고 답했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는 삼성전자가 감산 행렬에 동참한다면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을 막을 계기를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으나 이는 당분간 무산될 전망이다. 김재준 삼성전자 DS부문 부사장은 “중장기 수요 대응을 위한 인프라 투자를 지속할 것”이라며 "다만 생산라인 최적화나 미세공정 전환에 따른 ‘자연적 감산’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단기간에 반도체 수요가 회복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올해 상반기까지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의 실적 악화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1분기 D램 가격은 전 분기 대비 13∼18% 떨어지며 하락세를 이어갔다. 2분기(4∼6월)에도 3∼8%가량 하락할 전망이다. 지난해 4분기와 연간 기준 모두 최대 매출 기록을 세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문도 올해는 전망이 밝지 않다.
다만 업계에서는 하반기(7∼12월)에 들어서면 상황이 개선될 여지도 있다고 기대한다. 인공지능(AI) 관련 시장이 커지며 메모리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점쳐진다. 하반기 인텔, AMD 등의 DDR5 지원 중앙처리장치(CPU) 생산이 본격화되면 D램 수요가 개선될 것이란 전망도 더해진다.
이날 삼성전자는 반도체 외에도 스마트폰, TV, 생활가전 등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실적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VD(영상가전사업부)·가전 등은 지난해 4분기 600억 원의 적자를 냈다. 삼성전자가 가전에서 적자를 낸 것은 2015년 1분기 1400억 원의 적자(CE사업부문) 이후 7년여 만이다. 중저가 스마트폰 판매 둔화 영향으로 모바일경험(MX) 사업부문도 지난해 4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 분기 및 전년 동기 대비 감소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실적이 악화하는 상황에서도 지난해 4분기 20조 원이 넘는 시설 투자를 집행했다고 밝혔다. 반도체 사업에 18조8000억 원, 디스플레이 사업에 4000억 원 등이다. 경기 평택 사업장의 메모리 인프라와 극자외선(EUV) 등 첨단 기술 적용 확대 및 평택 파운드리 공장과 미국 테일러 공장 인프라 구축 등에 투자했다. 지난해 전체 투자는 53조1000억 원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