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대통령 내외의 해외순방에서 다시 수습하기 어려운 오점이 발생했다. '아랍에미리트의 적은 이란'이라는 발언의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야당을 비롯한 반대파들은 '대통령의 무지와 외교적 미숙'의 비난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적절하지 못한 발언이었다는데 이견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대통령실은 현지 파견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한 취지였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그런 발언이 장병들의 사기진작에 도움이 될 지도 의문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발언을 거저 우발적이거나 맹목적인 실수로만 봐서도 안된다. 오히려 나름 계획적이고 상당히 의도적인 발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 하다. 윤대통령이 지적한 '북한과 이란'은 미국이 악의 축으로 지목한 국가들이고 지금도 여전히 미국과 대결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나라들이다. 그렇다면 윤대통령의 발언을 미국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방점을 두는 것이 맞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표현과 내심까지 헤아려야 발언의 득실을 계산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한족과 이민족이 대륙에 세운 여러나라에 화전양면책을 적절히 구사해 왔다. 다만 조선 개국이후 명나라에 대해서만 지나친 의리를 지켜온 이력이 있다. 해방 이후로는 미국에 대해 어느 나라보다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왔다. 반미주의자는 제도권 정치에는 아마도 상당 기간 진출이 불가능할 정도로 친미는 우리나라의 국시와 다름없다.
그렇다면 중동에서 우리나라의 강력한 친미노선을 표방하는 것이 우리나라와 미국에 얼마만큼 도움이 될지를 냉정하게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에 대한 진지한 검토의 바탕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평가돼야 한다.
만약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발언이었다면 대미외교에서는 포인트를 올린 것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 이전 문재인 대통령이 대미외교에서 균형을 추구한 편이었다면 윤 대통령은 좀 더 노골적이며 과감하게 한미공조에 무게를 싣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장 눈에 띄는 아쉬운 점이라면 국민경제는 정치만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받는 충격이라야 잠시 지지도가 출렁거리는 정도이겠지만 많은 국민과 기업들은 미국 대신 중국이나 중동 및 여러 제3국가들과 교류하며 살아 가고 있다는 점을 좀 더 감안해야 했다는 것이다. L그룹 같은 재벌기업들도 사드 배치로 중국시장에서 큰 타격을 받은 적이 있다. 영세한 기업이나 개인들에겐 정치적 파장에서 물려오는 격랑을 견딜 능력이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