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하략)‘
시인 이병기의 ‘낙화(洛花)’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고 한다. 세상사도 그래야만 되는 것이 아닐까.
작금 손병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에게 특히 이 시 한 구절 한 구절이 더욱 절심하게 다가 올 둣 싶다
25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지난해 1월 취임한 손병환 회장은 올 12월 첫 임기가 만료되는데, 내심 연임을 노리고 있다.
손 회장은 NH농협은행과 농협중앙회를 오가며 경력을 쌓았고,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다.
실적 면에서도 나무랄 데 없다. 실제 지난해에 이어 올해 상반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뿐만이 아니다. 1962년생으로 다른 금융지주 회장에 비해 젊다.
그런데, 세상일이 이런 것만 술술 풀려 나갈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라는 게 경험칙으로 통한다.
우선 당장, 가장 큰 변수는 정치권이다.
지난 2020년 3월 NH농협은행장으로 취임한 지 9개월 만에 지주 회장에 오른 손 회장은 2012년 농협중앙회가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면서 농협금융이 출범한 이래 사실상 첫 내부 출신 회장이다.
농협 출신인 초대 신충식 회장이 3개월 만에 물러났고, 이후 신동규·임종룡·김용환·김광수 전 회장까지 모두 옛 재무부 관료 출신들이 수장으로 선임됐다.
손 회장이 은행장에서 회장직에 오를 때도 여러 관료 출신들이 유력 후로 거론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새 정부 출범에 공을 세운 경제관료들이 논공행상 차원에서 농협금융 회장 자리에 욕심을 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대장동 개발 사업 이슈도 손 회장의 연임 가능성에 물음표를 던지는 모습이다.
NH농협은행과 NH농협생명보험은 화천대유에 1100억원, 성남의뜰에는 1136억원 등 5056억원을 빌려줬는데 이는 전체 사업비의 32.3%를 차지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측근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구속으로 대장동 이슈가 다른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정치적 블랙홀이 된 만큼, 손 회장이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고액의 횡령·배임 사건이 벌어진 NH농협은행에 대한 통제 부실도 손 회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주철현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전체 은행권 사고액의 절반이 넘는 67억원이 농협은행 한 곳에서 횡령·배임으로 발생했다. 또 같은 시기에 가족 명의로 무려 25억원을 부당대출한 사례도 적발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