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제11ㆍ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씨가 사망했다. 향년 90세.
그의 재임 기간 중 고도성장과 물가안정, 국제수지 흑자,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의 성공적 개최,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 등이 달성됐다.
전두환 씨가 국가보위비상대책상임위원회 위원장이었던 1980년 7월 30일 단행된 대학교 입학시험 본고사 폐지와 과외금지, 학력고사 실시로 교육 양극화가 상당히 해소됐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업적들이 전두환 씨의 많은 죄를 덮을 수 없다. 또한 그는 사망할 때까지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등에 대해 사과도 반성도 하지 않았다. 내야 할 추징금 2205억원 중 미납된 추징금이 956억원이다.
군부 쿠데타 동지였던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살아생전에 추징금 2628억원을 다 내고 아들을 통해서라도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에 대해 사과한 것과도 대조된다.
이런 이유로 그의 죽음에 대해 정치권과 우리 사회의 반응은 고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 때와도 확연히 다를 정도로 차갑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들은 일제히 고 전두환 씨 빈소에 가서 조문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정부도 고 전두환 씨 장례를 고 노태우 전 대통령과는 달리 국가장으로 거행하지 않을 방침이다.
알츠하이머와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등의 지병을 앓아왔던 전두환 씨는 23일 오전 8시 40분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연희동 자택에서 사망했다.
전 씨는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져 오전 8시 55분쯤 경찰과 소방에 신고됐고 경찰은 오전 9시 12분쯤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달 26일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하고 28일 만에 세상을 떠난 것.
고 전두환 씨 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23일 세브란스병원 신촌장례식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고인이 회고록에서 ‘북녘땅 내려다보이는 전방 고지에 그냥 백골로 남아 있고 싶다’고 남긴 내용이 사실상의 유언이다”라며 “평소에도 가끔 ‘나 죽으면 화장해서 그냥 뿌려라’라고 말씀하셨고 가족들은 유언에 따라 그대로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두환 씨는 지난 1931년 1월 18일 경상남도 합천군에서 태어났다. 1955년 육군사관학교(11기)를 졸업하고 군인을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제3공화국 시절이었던 1964년 3월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결성했다. 하나회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비호를 받으며 세력을 키웠고 결국 전두환 씨가 군부 쿠데타로 집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79년 10월 26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후 전두환 씨는 국군보안사령부 사령관이었다.
전 씨는 합동수사본부 본부장으로서 고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했다. 이후 12ㆍ12 쿠데타와 5ㆍ17 쿠데타를 일으키고 이에 저항하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유혈 진압하며 민주화를 요구하는 무고한 시민들을 대량 학살했다.

집권 기간 언론통폐합 조치와 보도지침 등을 통한 보도통제로 언론 자유는 극도로 제약됐다. 삼청교육대와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행된 잔혹한 고문 등으로 인권은 참혹하게 유린됐다.
1987년 1월 발생한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을 계기로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을 타도하고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6월 항쟁이 전국에서 일어났고 당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6ㆍ29 선언을 해 제5공화국도 종식됐다.
전두환 씨는 1988년 2월에 대통령직에서 퇴임한 후 빠르게 몰락했다. 1988년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등에 대한 비난 여론이 확산되자 재산 헌납을 선언하고 백담사에 칩거했다. 그러나 재산 헌납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재임하고 있었던 1995년 12ㆍ12 쿠데타,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등으로 구속기소됐고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과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받았다. 1997년 12월 22일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그는 2017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광주시민들에 대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란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고 지난해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불복해 항소했다. 오는 29일 결심 공판이 예정된 상황이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순자 여사와 아들 재국·재용·재만 씨, 딸 효선 씨가 있다. 재용 씨 부인이 배우 박상아 씨다.
전 씨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미국에 체류 중이던 3남 재만 씨가 귀국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 5일장으로 진행된다. 입관은 25일 오전 10시, 발인은 27일 오전 8시다. 내란죄 등으로 실형이 확정돼 국립묘지에는 안장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