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식의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21019] 페인티드 베일 - The Painted Veil
[이충식의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21019] 페인티드 베일 - The Painted Veil
  • 이상호 기자 sanghodi@hanmail.net
  • 승인 2021.09.0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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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갈색으로 풀어진... 영화 <페인티드 베일>의 오프닝 장면은 자욱한 안개 속에서 항해하는 배들을 담아냅니다. 

이윽고 벼의 초록색 물결로 가득한 중국 오지의 농촌이 나타나며 주인공 부부가 그 모습을 드러내죠. 

한데 남편 월터(에드워드 노튼 분)는 양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채 무거운 표정으로 무슨 생각에 골똘히 잠겨 있는 것 같고...

아내 키티(나오미 와츠 분)는 월터와 120도 정도 틀어진 방향을 바라보며 서있는 뒷모습만 비춰집니다. 

이 첫 시퀀스만으로도 이들 부부가 심각한 길항(拮抗)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죠.  

1925년 영국 런던... 고고한 예술적 감성의 아가씨 키티는 숨 막히는 듯한 런던의 무료한 일상 속에서도 화려한 사교 모임과 댄스파티를 즐기며 지냅니다.

그러나 세속적인 허영으로 가득한 키티의 엄마는 결혼은 생각도 없는 과년한 딸을 사뭇 못마땅해 하죠. 

도도한 키티는 그런 억압적인 시선을 견디다 못한 채, 결국 애정이 없는 결혼을 충동적으로 결정하기에 이릅니다. 

상대는 영국 정부 소속의 과묵한 세균학자 월터 페인이었죠. 

에릭 사티의 피아노곡 '그노시엔느'가 몽환적으로 흐르는 사교 파티에서 월터는 첫눈에 반한 키티에게 곧바로 청혼을 합니다.

청혼 후 키티와 함께 꽃집에 들른 월터는 그녀에게 꽃을 좋아하냐고 물어보죠..

키티는 말합니다.

"좋아하긴 하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우리 집에선 꽃을 사는 일이 드물어요. 

어머니는 그러셨죠. '공짜로 키울 수 있는 걸 뭐 하러 돈주고 사니?' 

그렇다고 심고 가꾸는 것도 아닌데... 사실 맞는 말이긴 해요. 곧 시들어버릴 것에 시간과 정력을 들인다는 거 말에요."

바로 그런 꽃처럼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는... 월터의 진지한 청혼을 키티는 얼떨결에 받아들였지만 사실 공허한 현실 도피나 마찬가지였죠. 

자기중심적이고 외향적인 키티와 매사 너무 진중하고 조용히 연구와 독서를 즐기는 내성적인 월터... 

성격과 취향이 이토록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행복할 리 만무합니다.

월터는 착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지만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은 무척 서툴기만 하죠. 

그는 춤과 테니스를 좋아하는 키티의 취미를 헤아리지 못한 채, 아내를 위한다며 미술관으로 끌고 가기 일쑤입니다.

비 오는 날 키티는 창밖을 바라보며 비가 엄청나게 내리고 있다고 되뇌지만, 정작 월터는 타자기를 두드리며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는 식이죠.

그렇게... 두 사람은 부부지만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처럼 서로 소원해져 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 부부는 매력적인 외모의 부영사관 찰리 타운 센트(리브 슈라이버 분)가 초청한 파티에 참석하죠.

키티는 세련된 매너와 생각이 통하는 찰리와 걷잡을 수 없는 불륜에 빠져듭니다. 

급기야, 자신의 부정을 눈치 챈 월터 앞에서 키티는 찰리를 사랑한다며 오히려 이혼해 줄 것을 요구하죠. 

월터는 분노하며 키티에게 냉소적으로 답합니다. 

"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소. 찰리가 자신의 아내와 법적으로 헤어지고 당신과 결혼하겠다는 약속을 해야지만 조용히 이혼을 해주겠소." 

키티는 당연히 찰리가 아내와 깨끗이 결별하고 자신과 새로운 출발을 할 줄 믿었죠. 

그러나 교활하고 비겁한 찰스에게 그녀는 단지 하룻밤 연애 상대였을 뿐...

결국, 키티는 샤를 페로의 동화 속 폭력적인 주인공인 '푸른 수염'(La barbe bleau) 행세를 자처하는 남편을 따라 연옥의 한가운데에 발을 내딛게 됩니다.

월터는 드러나지 않는 잔인한 방법으로 키티에게 내밀한 고통을 안겨주죠. 

그는 절대로 키티의 눈을 쳐다보며 말을 건네지 않습니다. 부부관계도 없죠...

더군다나 월터는 콜레라가 번지고 있는 중국 남서부의 관서 지구 메이탄푸에 자원합니다. 

사지(死地)나 다름없는 콜레라 소굴에 아내를 끌고 들어간 것이죠. 

믿음과 사랑을 배신한 대가를 치르게 할려는, 마치 같이 죽자는 가학적 복수의 심사인 셈으로...

영화의 첫 시퀀스에서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보이고 있는 이유입니다. 

자학(自虐)하듯, 굳이 2주나 걸리는 육로를 택해 힘겹게 오지 마을에 도착한 두 사람은 맨 먼저 콜레라로 죽은 시신을 목도하죠.

" 우리가 덜 불행했으면 해요. 그렇게 내가 경멸스럽나요?" 라 묻는 키티에게 월터는 냉소적으로 받아칩니다.

"아니, 나 자신을 경멸해! 당신을 한때나마 사랑했으니까."

키티는 그렇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월터를 향해 부르짖죠.

“여자의 사랑을 못 받는 건 남자 탓이지, 여자 탓이 아녜요!

월터 또한 키티에게 쏘아붙이듯 내뱉습니다.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걸 알면서도 당신을 사랑했어. 나중에라도 날 사랑해줄 줄 알았지.” 

그들이 거주할 곳은 전에 살던 사람들이 이미 콜레라로 사망한 좡족의 전통가옥이었죠.

집엔 죽음으로 가득한... 두 사람의 어두운 그림자만이 존재할 뿐으로, 식사 중 "소금 좀 건네줄래요?" 라는 의미 없는 질문에 대한 대답조차 돌아오지 않습니다.

키티는 다음날 인사 온 지역 부책임자 워딩턴(토비 존스 분)을 이웃들 중 한 분이 오셨다며 반갑게 맞이하지만, 그는 정작 영국인 중 자기 혼자 살아남았다고 토로하죠.

수녀님들에게도 하루빨리 마을을 떠나라 설득했지만 순교자가 되고 싶어 그러는지 거절했다며 곤혹스러워 하는 워딩턴...

시대가 시대인지라 마을 주민들 또한 "서양 살인마를 처단하라!" 는 전단지를 곳곳에 붙일 정도로 강제 침략자 모습의 서양인을 극렬하게 배척하죠.

그들은 숱한 생채기의 고통이 만들어낸... 신음과 노여움이 짙게 배인 저주의 욕을 퍼붓습니다.

"살인마들, 니네 땅으로 가!"

워딩턴은 키티가 콜레라보다 국민당원들 손에 먼저 죽을지도 모른다며 그녀를 보호해줄 중국 군인 성칭을 배치해주죠.

그렇게...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콜레라로 마을 사람의 태반이 죽어나가는 곳에서,

월터는 키티의 존재를 철저하게 무시한 채 연구와 의료봉사에 미친 듯이 매달립니다.

그러나 무지와 피해 의식으로 인해 적대적인 마을 사람들로 괴로워하는 월터에게 국민당 장교 유대령은 충고하죠.

"중국은 중국인들 것입니다. 한데 세상이 그냥 놔두질 않는군요. 인민들에게 총구를 들이대지 않고 평화롭게 해결했으면 좋겠어요."

그럼에도, 월터의 헌신적인 치료로 마을 주민들은 조금씩 마음을 열어갑니다만...

키티에게 메이탄푸에서의 유폐된 삶은 생지옥이나 마찬가지였죠. 

아는 사람도 전혀 없고 갈 곳도 없는 그녀는 집안에서 무료하게 하루를 보내며 속절없이 타들어갑니다. 

키티는 자신들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워딩턴에게 에둘러 말하죠. “여자는 남자의 장점을 보고 사랑하진 않습니다.”

남을 위한 일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키티였건만... 아수라도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수녀원이 운영하는 보육시설로 자원봉사를 나가죠.

어느 교파를 믿느냐고 묻고는, 키티가 신앙심이 그리 깊지 않다는 걸 확인한 원장 수녀는, 보육일을 돕겠다는 그녀를 내심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메시지를 건네며 수락합니다.

"사랑과 의무가 하나가 된다면 축복받은 거예요..."

키티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기쁨을 얻게 되고, 아울러 월터가 일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보며 그에게 측은한 감정을 느낍니다. 

나를 사랑했던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 해주어야겠다는 키티의 생각은 서서히 두 사람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어뜨리죠.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흔연스레 어울리는 키티의 본성을 알게 된 월터는 마을 청년들의 공격을 받아 위기에 처한 키티를 성칭의 도움으로 무사히 구해냅니다.

이를 계기로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이 살아나게 된 두 사람...월터는 후회어린 속내를 털어 놓죠.

"당신 말이 옳아.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서로에게 없는 것만 찾으려고 애썼어."

두 사람은 그토록 사랑에 오만했던 자신들의 모습을 뉘우치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만, 그 소중한 화합의 시간은 너무 짧기만 합니다.

월터는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강물을 공급하여 창궐하는 콜레라의 고삐를 잡는데 성공하죠.

그런데, 운명은 더 이상 그들을 봐주지 않는 걸까요... 방역과 사랑이 그렇게 완성되려는 순간에 키티는 뜻밖에도 자신이 임신하게 됐음을 알게 됩니다.

찰리의 아이일 것 같아 미안해하고, 또 괴로워하는 키티를 월터는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며 애써 달래죠.

그날 밤 월터는 잠든 키티를 뒤로 하며 원장 수녀에겐 아내가 상해로 돌아가길 원한다는 말을 남긴 채 도망치듯 떠나버립니다. 

콜레라를 피해 이주해온 이웃마을 주민 난민촌을 돌본다는 명분 이였습니다만... 월터는 그곳에서 그만 콜레라에 감염되고 말죠.

그는 키티에게 이곳을 어서 떠나라고 강권하다시피 이르지만, 그녀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남편을 간호합니다.

윌터는 그런 키티를 향해 혼신의 힘을 다해 말하죠.

”용서해 줘“

“당신은 잘못 없어요. 정말 미안해요!” 

키티의 눈물은 애절한 오열로 변하고... 월터는 아내의 곁을 홀연히 떠나갑니다. 

원장 수녀가 말했던 것처럼, '사랑과 의무' 가 하나로 묶인 원작의 의도는 영화의 엔딩 신을 통해 투영되죠.

화면은 어느덧 5살이 된 아들과 함께 런던 시내의 꽃집에 서있는 키티를 조명합니다. 

그녀는 꽃을 손에 주어든 아이를 보며 혼잣말처럼 되뇌죠.

“쓸데없는 일이야. 일주일이면 시들 텐데 돈이 아깝잖아?”

이는 영화 초반부 키티가 청혼하는 월터에게 '어머니가 자신에게 늘상 했던 얘기' 라고 대답했었던 말에 다름 아닙니다.

“그래도 예쁘잖아요?” 아들의 천진스런 한 마디에 그녀는 흡족해하며 장미꽃을 사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들려지는 아이들의 노래는 담담하면서도 아련한 정감이 배어나옵니다.

'맑은 샘물 곁에서'(A la claire fontaine) 라는 제목의 이 노래 속엔 반복되는 구절이 있죠.

‘오랜 세월 그대를 사랑했고, 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네‘

키티는 그렇게 영원히 잊지 못할 사랑, 그 하나 된 의무를 맘속 깊이 품게 됩니다.

꽃을 든 아들과 함께 집에 돌아가던 키티는 뜻밖에도 찰리와 재회하게 되죠.

아이가 몇 살이냐며 여전히 작업을 걸어오는 찰리를 싸늘하게 밀쳐내는 키티...

"누구에요, 엄마?" 라 묻는 아이에게 그녀는 방금 아침 세수를 마친 사람처럼 시원스레 말합니다.

"아무도 아니란다!"

1. <페인티드 베일 - The Painted Veil> 예고편
https://youtu.be/2omHxU_KeuQ

인류 역사에서 잔혹한 남편의 손에 처절히 죽어갔던, 혹은 남편에 대한 불만으로 결국 파멸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이른바 강요된 운명의 비극적 희생자 목록은 자못 긴 편입니다.

보바리 부인,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 나오는 여성으로 시동생과 사랑에 빠져 남편의 손에 죽고 맘),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피아 데 톨로메이 등등.

단테의 <신곡> '연옥' 편을 보면 불행한 여인 피아는 자신이 죽기를 바라는 남편에 의해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마렘마 언덕의 한 성에 유폐된 채 서서히 죽어가죠.

이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중세 이야기가 한 소설가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모양입니다. 

영국 작가 서머셋 몸은 단테의 피아 이야기와 자신의 홍콩 여행기를 바탕으로 한 편의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죠. 

1925년 <인생의 베일>이란 장편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습니다.

콜레라가 창궐하는 또 다른 마렘마인... 1920년대의 중국 메이탄푸에서는 남자는 남자였고, 여자는 여자였던 시대의 향수와 미몽이 하늘하늘 물안개처럼 피어오르죠.

원작 <인생의 베일>에는 달콤한 연애담이 아닌, 세상 물정 모르는 한 여인이 지옥의 한가운데서 어떻게 자기 내면의 길을 발견해 가는지에 대한 통찰과 풍자가 담겨 있습니다. 

반면, 존 커란 감독이 영화화한 <페인티드 베일>은 인생의 베일을 벗어던지고 남자가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여인의 이야기라기보다... 

운명의 불꽃에 산화(散花)한, ‘불운한 연인들(star-crossed lover)’의 애틋한 연서를 닮아있죠.

영화 오프닝 크레딧은 아름다운 꽃송이와 현미경을 통해 보이는 박테리아가 교차 편집된 장면과 함께 시작됩니다.

이는 존 커란이 미묘한 방식으로 두 사람의 순탄치 못한 결혼 생활을 암유하는 것이죠. 

커란의 시네마 버전에 의하면, 키티와 월터 두 사람의 불화는 다른 두 세계에서 기원한 꽃과 세균, 즉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의 문제처럼 보입니다.

그러므로 키티가 꽃이 만발한 런던의 화원을 떠나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으로 떠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세계를 떠나 월터의 세계로 진입한다는 의미로 여겨지죠.

영화 속 내국인이 외국인을 배척하고 서로에게 살의를 품는 1920년대 중국의 근대화 과정은...

남편과 아내로서가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타자였던 두 사람의 조우 과정과 무척이나 닮아 있습니다. 

성실하고 강직한 인품을 지녔으면서도 자신의 감정과 여자의 육체 모두에 서툰 월터에게 키티는 이렇게 말하죠.

“인간은 바보 같은 현미경보다 훨씬 복잡해요. 예측하기도 어렵고 실수도 하고 실망도 한다고요. 그러니 그만 비난해요.”

복수와 용서... 늘 사랑의 열정에 뒤처지기만 하는 이 덕목은 죽음의 한복판에서야 비로소 사랑의 가변차선을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월터와 키티의 사랑이 조심스레 싹틀 때, 양쯔강의 넘실대는 물은 심지어 배우자의 불륜조차도 사소한 것으로 느껴지게 할 만큼 도도하게 흘러가죠.

존 커란은 마치 대하소설을 읽듯 감정의 선을 정확히 조율해 매끈하면서도 아름다운 채색 판화 같은 영상미의 영화 한 편을 뽑아냈습니다.

복고풍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페인티드 베일>은 소설 같은 영화의 향기를 품어내죠.

화면에는 시종일관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이 자리합니다. 

생명의 터전이자, 아이들의 놀이터로... 그리고 두 사람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때에도 강물 위에 뜬 뗏목이 함께 하죠. 

월터의 목숨을 앗아가는 콜레라는 결국 탈수로 목숨을 잃는 병으로... 영화는 '물' 이 가지는 은유를 비감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콜레라에 걸린 월터는 의사임에도 '수액' 을 구하지 못해 속절없이 죽어가지요.

죽음 앞에서야 '페인티드 베일', 곧 굳게 드리워진 장막을 걷어내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 두 남녀, 너무 늦게 도착한 사랑... 

여전히 과거라는 시간의 굴레 속에서, 또 이국이라는 낯선 얼굴에서 할리우드는 그렇게, 동시대, 자신의 심장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진정한 사랑' 이란 판타지를 찾아 헤맵니다. 

- 영화 <페인티드 베일>(2006) 트레일러
https://youtu.be/9q8s4eKcqeQ

영화는 속세와는 동떨어진, 유려한 풍광의 산수와 콜레라의 창궐로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마을의 현실을 극명하게 대비시킵니다.

한 폭의 수묵화 같은 선경(仙境)이 극에 희망을 불어넣은 걸까요... 두 사람은 종국에 이르러서야 서로를 향한 증오를 거두게 되죠.

존 커란 감독은 애정 없는 부부가 파국으로 치닫던 길에 마주한, 얼룩진 행복의 섬광 같은 순간을 섬세한 시선으로 잡아내고 있습니다.

2. 에릭 사티 '그노시엔느(Gnossiennes)' 제1곡 '렌트'(Lent : 느리게)
https://youtu.be/YlNGACtIm1I

<페인티드 베일> 주제가 격의 '그노시엔느' 1곡은 극중 두 차례 등장하죠.

'렌트' 라는 표제처럼 단순한 듯 잔잔한 물결처럼 스며져오며 마치 빠져들 수밖에 없는 늪처럼... 

음악은 광시 지구의 습한 공기 속으로 서서히 듣는 이를 침잠시킵니다.

영화 초반부 키티가 월터를 무도회에서 처음 만나는 신에서 처음 나오는 이 곡은 화려하지만 왠지 딱딱하고 메마른 느낌으로 다가오지요.

두 번째로는 키티가 자원봉사에 뛰어들어 보육원 아이들을 가르칠 때 원장의 간청으로 피아노를 치는 장면에서 흐릅니다.

런던 파티장에서와는 너무도 달리... 매우 낡고 조율이 엉망인 피아노임에도 환상적인 신비의 에스프리가 살아 있는, 시정 넘치는 연주로 울려오지요.

같은 곡인데도 처한 상황에 따라 또 다른 뉘앙스로 들립니다.

이때 마침 현장에 들른 월터는 키티의 연주를 들으며 운명의 첫 만남을 떠올리게 되죠.

그의 입술은 여전히 한일자로 굳게 다물어져 있습니다만...

- https://youtu.be/t27rzTkFKmU
: 랑랑 피아노

그리스 남쪽의 섬 크레타, 혹은 ‘크레타 사람의 춤’ 을 뜻하는 '그노시엔느'는 명상성보다는 풍자성에 좀 더 방점을 찍는 작품으로 읽혀지죠.

도입부도 종결부도 없는... 때도 없이 사라지고 결코 끝나지도 않는 음악으로, 시간을 초월해 속세를 벗어나고자 하는 인식을 줍니다.

3.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페인티드 베일 - The Painted Veil> 사운드트랙 모음곡
https://youtu.be/M7On3OIIwYw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내밀한 처연함으로 영화 전편을 감싸 안죠.

마치 수면 위를 적요히 떠가는 안개처럼 풀어지는 그의 음악은 드라마 속 깊게 패인 두 사람의 상흔을 어루만져 줍니다.

2007년 제64회 골든글로브는 데스플라에게 음악상의 영예를 안겨주었죠.

3-1. 'Promade' & 'Walter's Mission' &
'The Painted Veil'
https://youtu.be/ZtAIZwJ9x4U

3-2. Kitty's Journey'
https://youtu.be/R03_yrvlvDI

3-3. 'The End of Love' 
https://youtu.be/56IvXHU8lmM

5개의 음으로 구성된 짧은 선율의 '월터의 테마'는 장중한 오프닝 스코어인 '페인티드 베일'(The Painted Veil) 에 이어, '키티의 여행'(Kitty's Journey)과 '프롬나드'(Promnade), '월터의 미션'(Walter's Mission), 

그리고 월터가 콜레라로 죽어가는 결말부 스코어 '사랑의 종말'(The End of Love) 에 실려 옵니다.

4. 'Kitty's Theme'
https://youtu.be/0erYbZIvBtQ

키티의 성격을 반영하듯 변덕스러운 카프리치오 풍의 '키티의 테마' 는 장중 내내 '월터의 테마' 와 교차되며,

그녀가 찰리와의 불륜 문제로 월터와 싸우는 'The Deal', 

황량한 오지 마을에 도착했을 때 외로운 감성의 목관악기 듀오로 편곡된 'Morning Tears', https://youtu.be/ohAPQMnJLXA

그리고 어렵사리 생기를 되찾은... 화사하고 들뜬 키티의 마음을 담아낸 스케르초 풍의 'The Covenant' 로 엮어지죠.

5. 'River Waltz'
https://youtu.be/bIWAdO5FY_U

그러다 극 종반에 들어서며 '두 사람의 용서' 라는 터닝포인트를 계기로 미려함의 극치인 '강의 왈츠'(River waltz) 로 변주됩니다.

6. 'The Water Wheel'
https://youtu.be/VuuXvoQzCc0

월터는 콜레라 전염의 온상인 마을 우물과 하천 물 음용을 폐쇄하죠.

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레방아를 이용해 강 윗목의 깨끗한 물을 퍼 올려 대나무 관을 통해 마을로 흐르게 할 때 이 곡이 흐릅니다.

눈이 부시도록 투명하고 경쾌하게 부서지는 물소리를 랑랑이 영롱한 터치의 피아노 연주로 표현해주고 있죠.

7. '맑은 샘물 곁에서'('À la claire fontaine)
https://youtu.be/IcSAd4Is-9g

https://youtu.be/pDQS2kWRqXQ

'잃어버린 시간' 의 주제를 노래하는 프랑스 민요 '맑은 샘물 곁에서' 는 영화 엔딩 신과 함께 합니다. 

8. 'The Painted Veil' 
- 바이에른 방송 관현악단
https://youtu.be/W6eqn_LKRLY

9. 'From Shangai to London' 
- 랑랑 피아노 :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
https://youtu.be/PxRFs8DBDNw9

영화 속 클래식 음악을 주제로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칼럼을 쓰며 강의도 하고 있고, 조만간 책으로 출판 예정이라고... 현재 영등포문화재단 혁신경영관으로 재직 중이다.

- 李 忠 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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