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처장: 김진욱)가 공식 출범했다.
지난 1996년 15대 국회에서 부패방지법안이 최초로 발의된 이후 수많은 논의를 거쳐 2019년 말 20대 국회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통과됐다.
이후 21대 국회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 추천과 국회 인사청문회,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대통령 임명 절차를 거쳐 21일 공수처가 역사적인 첫걸음을 내딛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청와대에서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고위 공직사회의 투명성과 청렴성 지킴이로서 우리 사회를 더 공정하고 부패없는 사회로 이끌어가는 견인차로서 자긍심과 사명감을 가져 달라”며 “처음 출범한 공수처인 만큼 차근차근 국민 신뢰를 얻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적법 절차와 인권친화적 수사에 전범을 보여준다면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덕목은 역시 중립성과 독립성”이라며 “정치로부터의 중립, 기존 사정기구로부터의 독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제 공수처에 검찰ㆍ경찰의 수사 역량을 합친 것이 대한민국 전체의 수사 역량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전체의 수사 역량을 더 건강하게 발전시켜 나간다는 점에서 수사 역량을 높여 나가기 위한 검ㆍ경과의 협력도 매우 중요하다”며 “정말 공수처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덧붙였다.
이날 공수처 출범 행사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취임식과 현판 제막식만으로 간소하게 진행됐다.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은 2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거행된 취임식에서 한 취임사에서 “공수처의 권한이 주권자인 국민께 받은 것이라면 그 권한을 받은 공수처는 당연히 이러한 사실을 항상 기억하고 되새기며 권한 행사를 해야 할 것”이라며 “저는 이러한 권한 행사를 성찰적 권한 행사라 부르고자 한다. 성찰적 권한 행사라면 권한을 맡겨주신 국민 앞에서 항상 겸손하게 자신의 권한을 절제하며 행사할 것이다. 수사와 기소라는 중요한 결정을 하기에 앞서서 이러한 결정이 주권자인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결정인지, 헌법과 법, 그리고 양심에 따른 결정인지 항상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권자인 국민 앞에서 결코 오만한 권력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공수처가 ‘국민의 신뢰를 받는 인권 친화적 수사기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국민이 염원하시는 공정한 수사를 실천하는 수사기구로 태어나야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먼저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철저히 지키고,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성역 없이 수사함으로써 공정한 수사를 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진욱 처장은 “헌법상 적법절차원칙을 준수하며 인권 친화적인 수사를 하면서 다른 수사기관과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견제할 것은 견제하는 관계를 구축하겠다”며 “실체적 진실 발견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적법절차와 무죄추정의 원칙에 입각해 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는 품격 있고 절제된 수사를 공수처의 원칙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가장 중요한 덕목은 역시 중립성과 독립성”
이어 “공수처가 새로운 수사기관으로 출범하면서 기존의 수사기관들과 갈등을 빚고 나라의 반부패수사 역량이 오히려 저하될 것이라 우려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새로 출범하는 공수처와 검찰·경찰이 서로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서로 견제할 것은 견제한다면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는 상생 관계가 되리라 확신한다”고 밝혔다.
김 처장은 “공정하고 투명한 채용절차를 마련하고, 자유롭게 소통하는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들겠다. 수사 결과만을 최우선으로 하는 과거의 잘못된 수사 관행은 폐쇄적이고 경직된 조직문화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을 수 있다”며 “다양한 경력과 배경을 가진 인재들을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채용함으로써, 공수처를 활력 있는 조직, 일하고 싶은 조직으로 만들겠다. 또한 외부위원들이 참여하는 투명한 면접시험 등의 절차를 통해 출신과 배경에 관계 없이 사명감과 능력과 자질을 갖춘 인재들을 공수처의 검사와 수사관, 직원으로 선발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동시에 조직 내부에서도 견제와 균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직제를 만들고 공정한 수사절차를 운영하며, 자유로운 내부 소통을 위한 수평적 조직문화도 구현하겠다”며 “이러한 다양성과 투명성, 개방적이고 상호 소통하는 조직문화가 확립된다면 공수처의 권한이 처장에게 과도하게 집중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자연스럽게 불식되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진욱 처장은 이날 취임식 후 취재진과 만나 “적어도 다음 주 중에 (차장 제청을)하지 않을까 한다”며 “복수로 할 것이며 3∼4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행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수처 차장은 처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공수처의 작동 원리가 담길 규칙 공포에 대해선 “사건사무처리규칙·공보규칙·준칙 등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신중히 검토해 1∼2주 안에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검경이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 사건 이첩기준에 대해선 “사건 진행 정도, 공정성 등을 감안해 할 수 있게 돼 있다”며 “세부적으로, 유형별로 구체화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김 처장은 현재 정부과천청사 5동에 입주한 공수처가 독립된 공간으로 이전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김진욱 “다른 수사기관과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견제할 것은 견제”
그는 “다른 외청과 같은 건물을 쓰면서 수사하고 피의자·참고인을 소환하는 것이 적절한지 검토할 것”이라며 “수사의 밀행성, 인권을 위해선 개방된 곳보다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공수처는 출범 첫날인 21일 하부 조직을 ‘2관·4부·7과’로 설치하는 것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공수처 직제를 마련해 공포·시행함을 밝혔다.
공수처는 핵심 업무인 수사·기소·공소유지에 대해 기능상 상호 견제를 위해 수사부(3부)와 공소부를 분리해 편제했다. 수사부는 총 3개부, 공소부는 1개부로 구성된다. 부장은 공수처 검사가 맡는다.
실질적인 수사를 뒷받침하기 위해 과학수사·사건관리 부서와 자체 정보수집·사건분석 부서를 편성했다. 대변인·기획·운영지원·감찰부서 등은 최소 규모로 편제했다.
공수처는 앞으로 공수처법에 규정된 정원 85명(차장 1명·공수처 검사 23명·수사관 40명·행정 직원 20명)을 순차적으로 충원할 예정이다. 21일에는 출범에 맞춰 검찰로부터 수사관 10명을 파견받았다. 타 부처에서 행정 직원 10여명도 파견·전입받았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21일 정부과천청사에 열린 공수처 현판식에서 “이날이 언제 오나 조마조마한 순간이 많았다. 많은 분이 걱정의 날밤을 보냈을 것”이라며 “공수처 출범은 검찰개혁을 바라는 촛불 국민의 염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가 김대중 정부 공약에 대한 마침표를 찍었다”고 말했다.
추미애 장관은 이날 본인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오늘의 이 순간은 오로지 더 나은 대한민국을 염원해 오신 촛불시민의 강력한 지지와 응원 덕분이었다. 공수처 출범 이후에 해야 할 일 역시 태산”이라며 “이제 검찰개혁의 확실한 마무리를 위해 당정청의 중단 없는 개혁 의지가 더욱 확고히 실행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경기 구리시, 법제사법위원회, 4선)은 이날 현판식에서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일부 허물었다는 것도 출범 그 자체의 의미”라며 “인권 친화적 수사기관으로서 최첨단에 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한 목소리로 공수처에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하면서도 각론에선 확연한 입장차를 나타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21일 국회에서 개최된 정책조정회의에서 “공수처 논의가 공전되는 동안 국정농단, 사법농단 등 권력형 비리가 계속 있어왔다. 공수처가 그 같은 권력형 부정부패와 비리, 검찰의 권한 남용을 뿌리 뽑는 독립적이고 공정한 수사기구로 뿌리를 내려야 할 것”이라며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은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굳건히 지키고, 투명하고 공정한 수사로 공직사회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척결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의당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한 브리핑에서 “공수처는 검찰의 기소권 독점이라는 잘못된 제도와 수사 관행으로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겐 유독 약했던 불의로 인해 만들어진 제도”라며 “공수처 출범으로 법 앞에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는 공수처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입증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공수처는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을 떨치고 신뢰를 얻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출발한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국민의 의구심을 떨치고, 사법 정의가 실현됨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의당 송치용 부대표는 21일 국회에서 개최된 상무위원회에서 “검찰의 기소 독점으로 특권층은 치외법권에 숨어 처벌받지 않았고, 검찰은 스스로 면죄부를 내리는 것으로 법치국가와 민주공화국을 부정하며 부정부패를 키워왔다”며 “그 출발이 힘들었던 만큼 공수처는 더욱 공명정대한 운영으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김예령 대변인은 “공수처가 국민적 신뢰를 얻기 위해선 정치적 중립과 성역 없는 수사, 이에 대한 공수처장의 실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국민의힘은 공수처가 권력 눈치 살피는 정치적 방패막이, 정권 수호처로 전락하지 않도록 국민들과 지켜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민의당 홍경희 수석부대변인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권의 방패막이로 쓰이는 ‘정권의 공수처’가 아닌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중하게 칼을 들이대고 고위 공직자에 대한 범죄를 가감 없이 수사하며 공명정대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는 ‘국민의 공수처’가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