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른바 ‘정인이 사망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한 범정부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정부는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아동학대 대응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해 지금까지의 아동학대 대책을 점검하고 보완할 점 등을 논의했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오는 3월부터 시행 예정인 즉각 분리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보호시설 확충 등 일시보호체계 강화에 만전을 기하기로 했다.
즉각 분리제도는 아동이 1년에 2회 이상 학대로 신고되는 경우 등은 보호조치 결정 전에도 분리보호가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다.
정부는 예비양부모 검증을 강화하고, 입양 후 초기 사후관리를 통해 아동과 양부모의 안정적인 상호적응을 지원하는 한편, 아동학대 발생 시에는 경찰, 아동보호전문기관, 입양기관 등이 유기적으로 협조해 입양가정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등 공적 책임을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올해 안에 전국 모든 시군구에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총 664명을 배치하고 전문성을 강화해 안정적인 아동학대 대응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약사(학대행위자들이 피해아동을 학대한 뒤, 병원 내원이 아닌 약국에서 약품을 구입해 치료를 하려는 성향이 있음), 위탁가정 부모 등 아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직군을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로 추가해 아동학대 조기발견을 강화한다.
경찰·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조사과정에서 출입할 수 있는 장소의 범위를 확대해 신속하고 철저한 피해아동 보호가 이뤄질 수 있도록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경찰·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조사과정에서 출입할 수 있는 장소의 범위가 신고된 현장에서 앞으로는 신고된 현장 또는 피해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장소로 확대될 전망이다.
2회 이상 반복 신고된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반기별 1회 이상 경찰 자체적으로 사후점검을 정례화하기로 했다.
특히 반복 신고 다음 날에 대상 아동의 가정을 직접 방문해▲분리조치 필요성 ▲추가 학대 여부 등을 면밀히 확인하고 아동 보호 및 지원 방안 등을 점검할 계획이다.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와 파급력을 고려해 경찰청에 아동학대 예방 및 피해아동 보호를 전담하는 아동학대 총괄 부서를 신설해 관련 부처와의 협업을 강화하기로 했다.
여러 부처에 분산된 아동학대 대응 업무를 체계적으로 정비하고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개편방안 연구용역을 이른 시일 내에 추진하기로 했다.
5일 논의된 내용의 세부적인 실행방안은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내주 중 사회부총리 주재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확정하고 발표할 예정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5일 ‘아동학대 대응 긴급 관계장관회의’에서 “아동학대 가해자를 강력하게 처벌하기 위해 양형기준 상향을 법원에 요청하고, 입양 절차 전반에 걸쳐 공적 책임을 한층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개최된 원내대책회의에서 “끔찍한 고통 속에 생을 빼앗긴 정인 양의 참극에 마음이 미어진다. 국회와 정부가 위기 아동ㆍ청소년 보호 대책을 지속적으로 마련해 왔지만 아동학대 사건이 계속되고 있어 국민께 송구하다”며 “우리 아이들의 안타까운 희생을 막기 위해 아동 보호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데 보다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겠다. 정부가 이미 마련한 아동ㆍ청소년 학대 방지 대책을 신속하게 추진하고 현장과 소통하며 보완해 나가겠다. 입양아동, 인천 형제 화재사건 같은 방임 아동 등 각각의 아동학대 사례를 면밀하게 살펴 다양한 대책으로 촘촘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민법과 아동학대처벌법 개정 등 입법이 필요한 과제는 신속하게 추진하겠다”며 “현장에서 관련 기관의 소극적 대응을 방지하는 대책도 마련하겠다. 아울러 범죄피해자보호기금에 의존하고 있는 아동학대 예방ㆍ피해아동 보호 사업의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개최된 온택트 정책 워크숍에서 “지난 주말 한 방송을 통해서 자세히 드러난 정인이 사건이 온 국민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운 가혹행위에 시달리다가 두 살도 채 살지 못한 채 짧은 생을 마감한 정인이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 국민들은 모두가 죄인 된 듯한 참담함과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며 “해당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이런 사건들이 발생할 수 있는 원인을 애초에 없애는 촘촘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우리가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주호영 원내대표는 5일 국회에서 개최된 원내-법사위원 간담회에서 “정인이를 참혹하게 폭행하고 학대한 양부모도 양부모지만 정인이 학대를 막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치한 경찰도 결코 책임이 가볍지 않다. 경찰은 이미 한 경찰서에 세 차례나 학대 의심 신고를 받고도 번번이 무혐의 종결 처리하며 단 한 번도 관심을 두거나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았다”며 “온몸 곳곳에 멍이 들고 승용차에 오랫동안 혼자 방치되고 심지어 소아과 의사마저 112에 신고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안이하게 방치했다. 이쯤 되면 방치를 넘어서 방조범이자 공범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와 같은 범죄를 방치하고 방조하는 경찰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며 “대통령은 이 문제에 관해서 엄격한 책임을 물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이날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아동권리보장원’에서 한 ‘아동학대 예방책 마련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서 “우선 시민들이 학대받는 아동을 빨리 발견하고 신고하게 할 수 있는 조치들이 필요하다. 시민들의 교육이 필요하고 매뉴얼이 필요하다”며 “아동 전담 주치의 제도가 도입돼 정기검진을 통해 여러 가지 아이들의 상태를 빨리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신고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